지난 4월 취임 후 15일 첫 방한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한일 과거사에 대해 거듭 사과와 반성의 뜻을 표시했다. '다대한 손해'와 '고통'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고 마음으로부터 사과'한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는 고이즈미 총리의 과거사 언급은 전반적으로 지난 98년의 '21세기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 포함된 과거사 인식부문과 일치한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가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밝힌 "지금까지 외국으로부터의 침략, 조국 분단 등 참기 힘든 곤경과 수난속에서 (한국민들이) 받은 고통은 저의 상상을 초월한다"고 언급한 것은 지금까지 나왔던 것보다는 진일보한 표현이다. 이같은 언급은 지난 95년 무라야마 담화나 98년 파트너십 공동선언은 물론 지난8일 방중시 과거사 문제에 대해 언급했던 수준을 뛰어넘는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일본은 구체적인 표현없이 '다대한 손해', '고통', '참해'(慘害) 등의 다소 추상적인 표현으로 과거 불행했던 한일관계를 언급했지만 이번에 일본 총리 자신이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은 평가할 만 하다. 전반적인 과거사 인식 문제에 있어서 지난 95년 무라야마 담화나 98년 파트너십공동선언의 수준에서 언급하면서도 고이즈미 총리 자신의 입을 빌어 "상상을 초월한고통"에 유감을 표시한 것은 일본이 역사인식, 과거사 문제로 경색된 한일관계를 복원시키겠다는 나름대로의 고민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지난 8일 고이즈미 총리의 방중시 그의 언급은 "전쟁의 비참함을 새삼 절감했으며, 침략으로 희생된 중국인들에 대한 사죄와 애도의 기분을 갖고 견학했다", "두번 다시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된다"는 것 뿐이었다. 이 때문에 정부 당국자들도 "지난 95년 무라야마 담화나 98년 파트너십 공동선언은 물론 지난 8일의 방중당시 고이즈미 총리의 과거사 언급을 기준으로 판단해 달라"면서 "우리의 기대에 100% 만족할 수는 없어도, 나름대로 진전된 언급인 것이 아니냐"는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사실 과거사 인식 문제와 관련해서는 '통절한 반성'과 '진심으로부터의 사과' 등을 언급한 무라야마 담화나 한일파트너십 공동선언의 언급 수준을 뛰어넘는 표현을 찾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고이즈미 총리 자신에 의해서 발생된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문제나 역사교과서 왜곡문제에 대해 명시적인 반성이나 재발방지책이 없었던 점은 다소 실망스럽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또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의 원인을 명시적인 일본의 침략으로 한정하지 않고,`외국으로부터의 침략, 조국 분단' 등으로 흐린 것도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이런 역사관계를 볼 때 서로 반성하면서" 라는 표현을 사용, 그 배경이나 의도가 즉각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향후 논란 거리로 떠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고이즈미 총리의 이같은 과거사 사과 언급이 왜곡교과서 문제와 야스쿠니 참배 문제로 경색될 대로 경색된 한일관계를 얼마나 되돌릴 수 있을 지는 현재로서는 미지수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고이즈미 총리의 과거사 언급에 관한 기본수준이 과거 무라야마 담화나 파트너십 공동선언과 비슷한 상황에서 '상상을 초월한 고통' 그 자체에 무게를 둘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특히 우리측이 그동안 집요하게 요구했던 재발방지책에 대한 언급이 없었던 것은 이번 방한행사 하나만으로 한일관계를 전면 재복원하기에는 난관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연합뉴스) 황재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