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8.15 광복절을 맞는 미상봉이산가족들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역사적인 6.15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지난해 8월15일 서울과 평양에서 감격적인이산가족 상봉이 아직도 뇌리에 생생한데 1년이 지난 지금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남북회담이 끊겼기 때문이다. 이산가족들은 "이제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은데.., 이산가족 상봉이 안되면편지만이라도 전할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며 일생의 소망을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 "반세기만에 처음으로 북에서 잃어버린 형들과 누나들이 꿈에 나타났어. 다음상봉때는 정말 명단에 포함될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현재 남북관계가 좋지않은것 같아 걱정이야" `1.4후퇴' 당시 가족과 생이별을 한 경유진(66.서울 성북구 정릉4동)씨는 큰 한숨을 내쉰 뒤 "정말 꼭 한번만이라도 형제들을 만날 수는 없는지"라며 왈칵 눈물을쏟았다. 당시 16세 소년이었던 경씨는 4살때 척추를 다쳐 거동이 불편했고 아버지도 몸이 불편해 피난을 미루다 형 호진(당시 27세).응진(당시 22세), 누나 경진(당시 30세).신진(당시 19세)씨를 먼저 피난길로 떠나보내야 했다. 피난길에 오르지 못한 경씨와 경씨의 부모는 종전후 서울 마포 집에서 혈육을기다렸지만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경씨는 "73년 아버님이 돌아가신 뒤 기어이 자식들을 보고 눈을 감겠다던 어머님마저 96년 96세를 일기로 눈을 감으셨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 50년간 운전과 화원일 등으로 생계를 꾸려온 경씨는 "올초의 3차 상봉 뒤에 정부로부터 상봉과 관련된 아무말이 없어 불안하기만 하다"며 덧없이 흘러가는시간만 원망했다. 경씨는 작년 남북정상회담을 지켜보고 곧바로 대한적십자사에 이산가족상봉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지난 3차례의 상봉에서 나이가 많지 않다는 이유로 모두 탈락한뒤 다음 상봉시기만을 손꼽아 기다려 왔다. 6.25 당시 북한 의용군으로 끌려간 동생 신철(69)씨를 애타게 찾고 있는 강선웅(70.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씨도 "하루빨리 이산가족상봉이 다시 추진돼 우리들의 가슴에 맺힌 한을 씻어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쟁 당시 늑막염을 앓았던 강씨는 의용군에 징집되지 않았지만 당시 19살로 중학생이던 동생은 의용군으로 끌려간 뒤 소식이 끊겼으며, 그간 동생을 찾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으나 허사였다고 한다. 강씨는 "동생을 만나진 못하더라도 생사여부만이라도 확인하고 싶다"고 애타는소망을 피력했다. 강건일(59.서울 마포구 아현동)씨는 6.25때 인민군에 의해 강제로 끌려간 외삼촌을 찾기 위해 오늘도 대한적십자사에 전화하는 일을 거르지 않고 있다. 전쟁 당시 서울에서 군과 경찰에 근무했던 강씨의 외삼촌은 전쟁이 터지자 피난을 가야할 처지였지만 강씨의 어머니를 혼자 두고 갈 수 없다며 강씨의 서울 집에숨어지내다 인민군에게 발각돼 끌려간 뒤 소식이 끊겼다. 전쟁 중 간혹 낙동강 근처나 청주 부근에서 외삼촌을 봤다는 연락이 오기도 했지만 휴전 이후로는 그나마 그런 소문조차 끊겼다. 강씨는 "집안사정이 넉넉지 못해 중국이나 다른 경로를 통해 혹시 북에 살아있는지도 확인하지 못했다"며 "어머니가 낙담의 세월을 보내다 몇년전에 돌아가셔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종우.여운창.이상헌 기자 honeyb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