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金正日) 북한국방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4일 채택한 8개항의 공동선언은 양국간 협력강화는 물론, 한반도 및 동북아의 역학구도에 적지않은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북한과 러시아는 작년 7월 평양에서의 1차 정상회담에 이은 이번 2차정상회담을 통해 지난 91년 한.소(蘇) 수교이후 다소 소원했던 양국관계를 완전 정상화했다는 측면이 짙다. 내용면으로도 양국은 정치.군사적 협력협정 체결, 교역확대과 전력협의, 북한의 철도현대화를 위한 러시아의 지원 확보, 한반도 문제해결에의 공감대형성,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제계획에 대한 공조구축 등에 합의함으로써 전방위 협력구도를 구축했다는 평가가 손색이 없게 됐다. 대체로 정부 당국자들은 북.러 협력 강화가 북한의 국제무대 편입과 남북대화촉진 등으로 이어져 장기적으로 한반도의 화해.안정 구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예컨대 이번 모스크바 선언이 특히 한반도종단철도(TKR)와 시베리아횡단철도(TSR) 연결사업에 대한 본격 실현단계 진입을 선포한 부분은 북.러 간의 협력뿐만 아니라 경의선 복원을 통한 남북 및 한러간의 협력문제도 포괄하고 있다는 점을 꼽고 있다. 그러나 외교 분석가들은 선언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북.러가 특히 무기와 부품판매에 상당한 의견접근을 이뤘다는 점 등은 당장은 아니더라도 향후 한.러관계와 한반도 정세에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가 주의깊게 관찰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편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의 정상회담과 선언은 주한미군 철수, 탄도탄 요격미사일(ABM) 협정, 북한 미사일 위협론 등을 제기하며 상당부분 유일 패권국인 미국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동북아 정세에 미칠 파장을 예고, 주목된다. 특히 북한측 입장에서 볼때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의 출범에 맞서 지난 1월 김위원장의 방중과 이번 방러 등을 통해 전통적 `인방'(隣邦)인 중.러와 관계를 완전정상화하는데 성공했다. 이미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의 MD를 둘러싸고 전략적 공조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9월로 예상되는 장쩌민(江澤民) 중국 주석의 방북이 이뤄질 경우 북-중-러의 협력구도는 긴밀화단계로 진입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한반도 현안이 북-중-러의 3각 협력과 한-미-일 공조의 대립구도 속에서 논의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기도 하다. 비록 북.러 선언이 주한미군 철수문제와 관련, "러시아는 북한의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입장에 이해를 표명하고 비군사적 수단으로 한반도의 평화, 안정을 보장해야할 필요성을 강조했다"며 원칙적 입장을 피력했지만 주한미군 문제는 한.미간 협의사항이라는 점에서 실타래가 더욱 꼬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분석이다. 다만 모스크바 선언이 명시했듯 "러시아는 북한과 미국, 일본과 같은 나라들 사이의 회담과정에서 성과가 이룩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언급했다"는 내용 등은 한반도 이해당사국 간의 의미있는 협의가 가능함을 내비친 것으로도 해석된다. 요컨대 올들어 중.러 방문으로 한반도 현안에 대한 나름의 입장을 정리했을 것으로 보이는 김 위원장이 대화재개 신호를 보내고 있는 한.미.일과의 대화에 언제,어떤 자세를 갖고 나설지가 한반도와 동북아 구도 재편의 관건이 되는 셈이다. (서울=연합뉴스) 권경복기자 kkb@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