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력한 증거가 없는데도 공안당국이 피의자 기소에 앞서 간첩인 것처럼 발표하는 것은 위법한 '피의사실 공표'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지법 민사합의42부(재판장 조수현 부장판사)는 20일 지난 94년 '구국전위'사건 당시 간첩으로 몰려 재판을 받았으나 무죄 판결이 확정된 이광철(45.전주 시민행동21 공동대표)씨 가족이 "증거도 없이 기소전에 간첩이라고 발표한 것은 '피의사실공표'에 해당한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는 이씨 가족에게 8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에따라 앞으로 관련자 기소 이전에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수사기관의 관행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옛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가 94년 6,7월 '구국전위사건'을 발표하면서 이씨가 반국가단체에 가입했다고 언론에 밝힐 당시 확보한 증거는 추후 검찰조사 도중 번복된 류모씨의 진술 외에 법률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것이 없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나 마치 이씨의 구국전위 가입사실이 확정된 듯이 `전북지역책이00' 등의 표현을 사용해 이후 무죄로 판명된 이씨의 피의사실을 공표했다"며 " 안기부의 이런 피의사실 공표행위는 공공성이나 공익성이 있다 하더라도 진실성 관점에서는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또 "국가는 이씨가 소송을 낸 시점이 피의사실이 공표되고 지명수배가 이뤄진 94년 7월 또는 9월부터 3년이 지나 손배 청구권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 사건의 경우무죄 판결이 확정된 97년 7월11일이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때'여서 청구권이 있다고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94년 6월 안기부의 구국전위 사건 발표 당시 자신이 전북지역책으로 소개되자 도피했다가 96년 5월 안기부에 자진출석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6월 및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았으나 2,3심에서 "구국전위 상층인사들의 일부 진술 외에는 이 단체 가입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되자 소송을 냈다. 이씨는 재판후 "이번 판결은 공권력에 의해 파괴된 한 가족의 평화를 법원이 인권침해로 인정한 전향적 판결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공권력의 인권침해 사례가 재발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se@yna.co.kr (서울=연합뉴스) 박세용.조계창 기자 phillif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