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신(金東信) 국방장관의 이번 방미는 미 행정부의 대북 및 대한반도 정책에 주도적 영향력을 가진 '실세'들과 만나 핵과 미사일, 재래식무기 등 대북현안에 관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해법을 찾아냈다는 평가를받고 있다. 김 장관은 국방수뇌로서는 이례적으로 1주일간 워싱턴에 머물며 행정부와 의회를 비롯한 미국 조야의 지도급 인사들을 폭넓게 만나 한국 정부의 대북 화해.협력정책의 '현실성'을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지지를 받았으며, 부시정부 출범이후에도 한미동맹은 여전히 굳건하고 건재함을 확인하는 성과를 얻었다. 이번 워싱턴 군사외교의 가장 큰 성과는 무엇보다 딕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등 초강성 인사들로부터 우리 정부의 대북 화해.협력 정책의 현실성을 인정받고, 공동의 인식아래 구체적 방법론을 만들어낸 데 있다고 하겠다. 체니 부통령과 럼즈펠드 장관은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나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 등 온건보수 인사보다 대북 불신이 강하고 북한의 위협 제거에 훨씬 역점을 두고 있고, 한국의 현 정부도 문제가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장관은 '대미통'과 '군인출신'이라는 점을 활용, 우리 정부의 대북포용정책에 대해 이들 '강성라인' 인사들이 갖고 있던 회의적 시각을 상당부분 누그러뜨리는데 일단 성공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핫 이슈'인 북한의 재래식 군사위협 문제와 관련, 92년 남북기본합의서에 의거해 한국이 대북 협상을 주도하기로 미국의 동의를 이끌어낸 게 가장 두드러진다. 김 장관은 남북기본합의서에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 ▲전진배치된 전력의 후방배치 등 군비제한 ▲군비축소 ▲평화체제 달성 등 점진적, 단계적 해법이 담겨 있는 만큼 이를 준용하고, 한미 양국이 긴밀한 협의를 통해 공동계획을 만들어 그것을 토대로 대북 협상을 하되, 한국이 주도하는게 효과적이고 실현 가능하다는 점을 논리적으로 설명했고, 이에 대해 럼즈펠드 장관과 체니 부통령은 동의했다. 물론 럼즈펠드 장관이 회담시간 부족으로 명시적 발언을 안해 '국방부가 아전인수한 게 아니냐'는 오해도 있었지만, 체니 부통령은 김 장관의 진지한 설명을 듣고 "전적으로 동의한다"(certainly agree with that)고 밝혀 오해를 불식시켰다. 결국 이것은 94년 제네바합의의 성공적 이행, 검증가능한 조치를 포함한 미사일개발문제의 조기해결 등을 포함해 핵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미사일은 미국이, 재래무기는 한국이 각각 맡는 사실상 '역할분담'에 동의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북한체제에 대한 부시 정부의 회의적 시각이 근본적으로 바뀐 것은 아니고, 북한의 재래식 군사위협을 미국이 중시하고 있기 때문에 북미대화에 북한이 얼마나 성의있는 자세로 나오느냐가 향후 정세의 향방을 가름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국방부 고위관계자는 "재래무기 문제에 대한 부시 정부의 중시 원칙이 바뀐 게 아니다"며 "미국이 이것을 공식의제로 삼았지만 '누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구체적 방법론을 완전히 정리하지 못한 시점에 김 장관이 현실적인 방법론을 제시했고, 그것을 미국측이 받아들인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와 함께 럼즈펠드 장관과 체니 부통령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정부의 대북화해.협력 정책에 강한 지지의사를 밝힌 것이나, 남북대화와 북미대화가 상호보완적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합의한 것은 그 함축하는 의미가 결코 작지 않다. 또한 부시 정부 출범이후 한때 '공백' 상태였던 한미공조를 복원하고, 50여년간 다져진 전통적인 한미동맹의 끈끈함을 재확인하는 한편 럼즈펠드 장관이 세계의 군사안보 구도를 혁명적으로 뒤바꿀 디펜스 리뷰(국방정책 재검토)에도 불구, 미국의 대한 방위공약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을 것이며 주한미군의 장기주둔이 필요하다고밝힌 것도 놓칠 수 없는 대목이다. 이처럼 한미 양국간의 유대를 재확인한데는 미 행정부 인사외에, 강성라인의 외곽을 형성하고 있는 의회와 헤리티지 재단, 민간연구소 인사들과 함께 미국의 한국전 참전용사들, 부시 전 정부의 한국관계 인사들을 아우른 것도 도움이 됐다. 북한 상선 영해침범 논란과 국방수뇌부 골프파문으로 국내가 시끄러운 가운데서도, 1주일간 워싱턴에서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면서 강행군을 한 김 장관의 대미 군사외교가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한반도 정세에 어떻게 기여할지 주목된다. (워싱턴=연합뉴스) 이 유 기자 ly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