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노갑 최고위원이 2선후퇴를 선언한 것은 자신의 거취문제가 김대중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커다란 부담이 될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당내 갈등이 자신의 퇴진문제로 불거진 상황에서 거취를 분명히 하지 않을 경우 당내 갈등이 지속되리란 점도 고려한 듯하다.

게다가 자신이 퇴진하지 않을 경우 김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당 쇄신의 의미를 반감시킬 것이란 우려도 짙게 깔렸다.

이같은 이유로 권 위원은 김 대통령을 면담한 뒤 거취문제를 결정하겠다던 당초 생각을 버리고 17일 밤 급작스럽게 퇴진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권 위원은 퇴진성명에서 "나라와 당과 대통령을 위해서 희생하고 양보하는 것이 저의 숙명"이라며 ''순명(順命)''을 강조한 것도 동일한 이유다.

권 위원측이 "이번에 밀리면 끝장"이라며 배수진을 쳐왔던 만큼 부정적 여론에 밀떠린 불가피한 선택으로 볼수 있다.

권 위원이 최고위원직에서 물러남에 따라 민주당내 역학구도는 물론 차기 당내 대권경쟁구도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동교동계가 권노갑 최고위원과 한화갑 최고위원의 양대축으로 형성된 상황에서 권 위원이 퇴진함에 따라 한 위원에게 동교동계를 포함한 당내 ''힘의 쏠림'' 현상이 나타날 개연성이 다분하다.

권 최고위원의 2선퇴진은 ''친권파''와 ''반권파''간 힘겨루기에서 한화갑 김근태 정동영 최고위원을 중심으로 한 반권파가 사실상 승리했음을 의미한 때문이다.

게다가 민주당은 당 쇄신을 위해 앞으로 최고위원의 기능을 강화한다는 입장이어서 반권파의 역할과 권한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역으로 이인제 최고위원을 중심으로 한 친권파의 입지가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차기를 노리는 이인제 최고위원은 사실상 ''홀로서기''를 위한 독자행보에 나설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이 위원으로선 권 위원과 연대로 나름의 당내 입지확대를 모색해 왔던 당초 전략의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권 고문이 물러난 만큼 국민을 상대로 한 정치를 본격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이 위원은 최근 강연 등을 통해 "당내 대선후보는 국민의 지지를 받는 인사가 반드시 선출돼야 한다"며 국민의 지지도를 강조해 왔다.

이 위원의 행보여하에 따라 당내 차기 대권경쟁이 조기에 점화될 개연성도 다분하다는 분석이다.

당초 김 대통령이 권 위원의 퇴진문제에 대해 고심을 거듭한 것도 권 위원 퇴진이 이같은 당내 파장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던 때문으로 보인다.

여권 관계자는 "앞으로 권 위원의 퇴진으로 당내 계파간 ''완충지대''가 사라졌다는 점에서 차기주자들간 경쟁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재창 기자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