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12일 국회에서 헌정사상 초유의 "실험"이 실시됐지만 결국 이런 평가를 받았다.

국회 예산결산특위는 당초 계수조정 소위원회를 공개한다고 밝혀 여론의 지지를 받았다.

지금까지 소위는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됐다.

특정 예산에 반대한 사실이 알려지면 정치적으로 엄청난 부담이 생기는데 어떤 의원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겠느냐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납득키 어려운 지역구 예산이 무더기로 반영되는 등 타협을 가장한 "야합"이 잦아졌다.

따라서 국회는 이런 관행을 깨고 투명하게 예산을 심의하겠다는 취지로 이날부터 회의를 공개하기로 한 것이다.

이날 오전과 오후 두차례 열린 회의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기자들이 좁은 회의장을 메웠다.

한 가지 예산항목을 놓고 한 시간 이상 토론을 벌이는 등 회의 분위기도 진지했다.

그러나 여야 의원들은 오후 늦게 실질적인 계수조정 작업에 돌입하면서 일방적으로 비공개를 선언했다.

여야는 "신속한 회의진행"을 위해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강변했다.

회의가 공개되면 간사협의 등의 형태로 어차피 비공개 채널이 생기기 때문에 효율적인 의사진행을 위해 잠시 회의장 문을 통제하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공개 회의에서 타협은 쉽지 않다.

한번 강경한 입장을 보인 의원이 수많은 시선이 집중된 상황에서 뚜렷한 명분없이 기존 주장을 철회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비공개 회의에서 가능한 "주고받기"식 타협도 쉽지 않다.

그러나 여야의 이런 결정으로 소위 회의를 공개키로 한 당초 취지는 완전히 퇴색됐다.

공개 회의에서 이뤄진 토론의 대부분은 예산안 항목에 대한 여야 및 정부의 입장을 확인하는 수준이었다.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이미 나왔던 문제를 재확인 하는 선에 그쳤다.

국민들이 진짜 알고 싶어했던 것은 항목조정 과정이다.

예산안 심의와 관련한 모든 잡음은 이 과정에서 나온다.

투명한 예결위 운영을 표방했으나 실질적으로 가장 중요한 과정을 감춰버려 밀실협상을 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국회가 모처럼 발전적인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했으나 결과는 실망뿐이었다.

명분없이 말 바꾸는 국회가 또 다시 국민의 신뢰를 저버렸다.

김남국 정치부 기자 n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