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전부터 형님 생일때마다 제사상을 차렸었는데 이렇게 살아계신 것을 확인하니 가슴이 떨려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2일 북한적십자회가 보내온 생사확인의뢰자 명단에 큰형 박상옥(67)씨가 들어있는 것을 본 동생 상범(58.서울 도봉구 창2동)씨는 "어머니께서 항상 "의용군으로 끌려나간 네 형이 총각으로 죽어 얼마나 배고프겠냐"며 매년 제사음식을 마련해 왔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서로의 생존을 믿지 않기는 북에 있는 상옥씨도 마찬가지 였던 것 같다.

상옥씨는 지금도 산을 오를 정도로 정정한 89세의 노모 주복연씨의 이름을 아예 생사확인의뢰자 명단에 넣지도 않았다.

상범씨는 "제과점을 다니던 형님이 자전거를 몰고 집에 오면 항상 뒤에 태워주시곤 했다"며 "7세의 어린 나이였지만 형님이 춘천국민학교 교정에서 의용군으로 끌려가던 모습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북에 있는 임흥근(70)씨가 남한에 있는 가족들을 찾는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장조카 임건섭(58.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안양2동)씨는 "아버지가 3년만 더 살아계셨더라면."하며 말문을 잇지 못했다.

건섭씨는 "삼촌은 전쟁이 나던 해 11월께 충북 진천군에서 집안 대표로 의용군에 끌려갔다"며 "아버지는 "삼촌이 대신 의용군에 끌려갔다"며 평생 마음의 짐을 지고 살아 오셨다"고 말했다.

건섭씨는 또 "삼촌이 의용군으로 끌려가던 날 마을밖까지 배웅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회고했다.

그는 "곧 돌아오겠다며 떠난 삼촌을 백발이 돼서야 만날 수 있게 됐다"며 기쁨을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형님 최병희(71)씨 생존 소식을 전해들은 동생 병화(64.충북 영동군)씨는 "친정에 간다"며 집을 나가 소식이 끊긴 형수와 함께 이 기쁜 소식을 듣지 못해 아쉬워했다.

어린 나이에 헤어져 형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는 병화씨는 "함께 끌려갔다 돌아온 동네 청년들의 말만 믿고 형이 죽은 줄로만 알았다"고 말했다.

병화씨는 형이 살아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해 상봉신청 조차 못했으나 뜻밖에 형의 생존소식을 접하게 됐다.

의용군으로 끌려갔던 사촌 동생 권오근(70)씨 가 북한에서 남쪽의 친척을 찾는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오각(82.강릉시 포남동)씨는 "오근이가 찾는 친형(오벽)이 세상을 떠나 못내 안타깝다"며 의용군에 가기 전 경포에 있는 조그만 막걸리 공장에 다니던 오근씨의 모습을 그려냈다.

오각씨는 "오근씨의 형제가 모두 6.25전쟁중 세상을 떠나 하는 수 없이 막내 삼촌의 아들을 양자로 받아들여 오근씨 아버지의 제사를 지내고 있다"며 "이제야 친아들이 차려주는 제사상을 받을 수 있게 돼 저세상의 삼촌도 기뻐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장유택 기자 chang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