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오빠!"

지난 15일 오후 4시께 김용순(50) 용란(43) 자매의 오열이 터져 나왔다.

방문단에 미처 들지 못한 자매는 오빠 김용환(68)씨를 만나기 위해 무작정 워커힐호텔로 찾아왔고 결국 짧지만 진한 상봉에 성공했다.

세 남매는 금세 얼굴을 알아봤으며 손을 맞잡진 못했지만 오가는 눈길로 서로의 정을 느꼈다.

버스에 오른 용환씨는 눈물을 글썽이며 연신 손을 흔들었고 누이동생들은 버스 옆에서 애타게 오빠를 불러 주위를 숙연케 했다.

북측 방문단 숙소인 워커힐호텔과 단체상봉장인 코엑스 주변에는 이같이 갖가지 아이디어를 동원한 ''007식'' 상봉이 속출했다.

단체상봉장 입장인원을 직계가족 5명으로 제한한 규정 탓이었다.

상봉장에 들어가지 못한 남측 가족들은 방문단이 이동할 때 피켓을 들고 잠깐 눈 인사를 하거나 핸드폰으로 즉석에서 통화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상봉장에 들어갈 수 있는 비표를 돌려가며 차례대로 상봉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일부 가족은 육성을 담은 녹음기를 틀어놓고 길었던 이별의 시간을 되짚었다.

북에서 온 오빠 백기택(68)씨를 만난 여동생 분옥(66)씨는 16일 워커힐호텔에서의 개별상봉에서 자신의 비표를 남편 오낙영(75)씨에게 전해줘 처남과 매부의 상봉을 성사시키는 기지를 발휘했다.

작은아버지 황억구(67)씨의 이름을 종이에 써서 들고 있던 조카 이상현(35)씨 가족도 15일 워커힐호텔에서 짧은 상봉의 기쁨을 맛봤다.

아내 아들 등 7명의 가족이 나온 이씨는 "처음 뵙는 얼굴이지만 피가 통해서인지 금방 알아보겠다"며 "서울을 떠나실 때까지 편안하게 계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버스가 출발하자 이씨 가족들은 버스 옆에 다가가 손을 흔들었고 황씨는 미소를 머금은채 두손을 굳게 잡아보이며 인사했다.

북에서 온 형 오경수(72)씨를 만나기 위해 코엑스에 나온 길수(69)씨는 동생 조카 손조카 등 무려 55명의 대식구와 함께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현장에 들어가지 못한 50명의 가족들은 ''환영합니다, 오경수-조카일동''이라고 쓴 종이를 들고 로비에서 북에서 온 가족을 맞았다.

김정태(72)씨를 만나러 온 매부 신현묵(75)씨와 형수 박정우(70), 계수 연종술(63)씨도 감동적인 만남에 성공했다.

이들은 호텔 로비에서 ''환영 김정태''라고 쓴 종이를 들고 이름을 연호하다 북측 일행 끝부분에 있던 김씨와 극적으로 만났다.

형수 박씨는 "얼굴이 50년전과 그대로여서 금방 알아봤다"며 감격해했다.

북에서 온 양한상(69)씨는 병환으로 코엑스에 나오지 못한 어머니 김애란(87)씨와 핸드폰으로 통화하며 만남의 기쁨을 대신했다.

양씨는 "어머니, 한상이 왔습니다"라고 울먹이며 "많이 편찮으세요,어머니. 곧 찾아가겠습니다"라며 통화를 마쳤다.

한편 6.25 전쟁으로 남편과 닷새를 지낸후 헤어진 뒤 평생을 수절해온 권오증(68) 할머니는 남편의 생사 확인을 위해 남측 이산가족상봉단이 머무는 서울 방이동 올림픽 파크텔을 맴돌아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