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그리던 동생이 오는데 이틀만 더 살았으면 한없이 저 세상으로 갈 수 있었을텐데…"

6·25전쟁때 헤어진 동생 노창(69)씨와의 상봉을 이틀 앞둔 지난13일 세상을 떠난 박원길(89·서울 은평구 신사동)씨의 발인이 치러진 15일 오전 신촌세브란스병원 영안실.

50년전에 헤어진 동생을 마중나가는 대신 차디찬 관속에 누운 고인 주변에는 부인 배복례(86)씨,아들 문규(64)씨 가족 친지 등 50여명이 모여 천추의 한을 품고 떠나는 넋을 위로했다.

부인 배씨는 남편의 영정앞에 힘없이 주저앉은 채 끝내 동생을 만나지 못하고 불귀의 객이 된 남편의 처지를 한없이 안타까워했다.

고인의 영정이 운구차에 실려 장지로 떠나기 직전 배씨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며칠만 더 참았더라면 평생 한을 저미고 이렇게 가진 않았을것 아니오"라며 울부짖는 배씨의 모습에 조문객들도 함께 흐느꼈다.

원길씨 가족들은 노창씨가 서울에 도착,빈소에 조문할 수 있도록 이날 오후 늦게까지 발인을 늦출 계획이었으나 빈소방문을 확답할 수 없다는 정부측 입장을 통보받고 이날 오전에 발인을 치렀다.

아들 문규씨는 "작은 아버지께서 선친의 빈소에나마 들러 마지막 가시는 길을 지켜볼 수 있기를 몸내 바랐었다"며 "단체 상봉장에는 사촌 2명과 셋째 숙모님이 나갔다"고 말했다.

50년만의 상봉 기회를 죽음이 빼앗아간 사례는 박원길씨뿐만이 아니다.

북쪽의 형 문병칠(68)씨를 만나러온 병호(64·강원도 고성군 죽왕면)씨는 15일 오전 TV를 통해 북한 고려항공 소속 비행기가 김포공항에 도착하는 모습이 보이자 갑자기 눈물을 쏟았다.

병호씨는 지난달 19일 북에 있는 형이 자신을 찾는다는 소식에 와병중에도 기쁨을 감추지 못하시던 어머니 황봉순(90)씨가 돌연 사망한 탓에 형과의 상봉에 감격해하면서도 상봉직전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가슴이 쓰라렸다.

병호씨의 여동생 정선(59)씨도 "조금만 더 빨리 오지 왜 진작 못왔어,중국을 통해 편지라도 했으면 좋았을텐데.우리 엄마 불쌍해서 어떻게…"라며 북에서 온 오빠를 부둥켜안고 몸부림쳤다.

북측에 생존해있는 것으로 발표됐다가 뒤늦은 노모의 사망소식을 들어야 했던 장이윤(72·부산시 중구 영주동)씨는 아직도 반신반의 하는 어투로 "살아계신다고 할때는 언제고 이제는 돌아가셨다고 하니 내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강창동 기자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