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말부터 해야할까. 나를 알아나 볼까."

15일은 남과 북으로 흩어져 살던 피붙이들이 반세기만에 부둥켜 안는 날.

꿈에 그리던 가족 상봉을 하루 앞둔 14일 남과 북의 이산가족들은 저마다 애절한 사연을 떠올리며 설렘과 흥분에 뜬눈으로 밤을 하얗게 지샜다.

워커힐 호텔에 묵은 평양방문단이나 올림픽파크텔에 모인 이산가족들에겐 50년 쌓인 한을 풀어줄 14일 밤이 생애에서 가장 긴 밤이었다.

행사일정이 분주하지만 생각할 때마다 솟구치는 건 눈물 뿐이다.

헤어진 가족을 만나게 되니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지만 응어리진 반세기의 한에 가슴이 저며온다.

전날 숙소인 서울 광진구 광장동 워커힐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낸 지방거주 이산가족 67명은 이날 오전 합류한 서울거주 이산가족 33명과 함께 본격적인 상봉일정에 들어갔다.

이들은 청와대 오찬과 방북안내 교육 등을 마친뒤 숙소에서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청했다.

남동생 봉조(62)씨와 해후할 이봉희(74·서울 성동구 옥수동)씨는 "어릴 때 헤어져 얼굴이 기억날 지 모르겠다"면서 "만나면 무슨 말을 먼저 꺼내야할지 모르겠다"고 걱정부터 했다.

이씨는 지난 47년 부모와 동생 4명을 두고 남편을 따라 월남했다.

이제는 북에 남동생 1명만 살아있다.

이씨는 "남동생을 만나게 돼 기쁘지만 나머지 가족들이 모두 죽어 말할 수 없이 착잡하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막내 아들 김병길(56)씨를 만나러 가는 서순화(82·여·서울 중랑구 신내동)씨는 다리가 불편한 데도 한손으로는 지팡이를 짚고 다른 한손은 며느리 송순옥씨에게 맡긴채 호텔에 도착,애끓는 모정을 보였다.

1·4후퇴 때 양말만 신고 피란길에 따라나섰던 다섯살 난 아들 병길이가 대동강 앞에서 ''발이 시려워 못가겠다''고 보채자 할머니에게 돌아가 있도록 한게 50년 한으로 남았다.

따뜻한 신발이 없어 반백년을 헤어져 살아야 했던 사연 탓에 서씨는 "농구화를 선물로 준비했다"면서 연신 눈물을 훔쳤다.

이선행(81·서울 중랑구 망우동)·이송자(82)부부는 북한에서 각각 헤어진 서로의 가족들을 만난다.

남편 선행씨는 아들 2명과,부인 이씨는 아들 1명과 상봉한다.

선행씨는 아들들에게 줄 선물로 손목시계와 비취반지,옷 20벌 등을 준비했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