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뾰족한 대안을 찾을 수가 없다. 정치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민주당과의 합당밖에 없다"

"이로써 3김시대가 간 것 같다. 명예롭게 은퇴하는게 가장 바람직한 길이다"

자민련 김종필(JP) 명예총재를 바라보는 당직자들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공동정권의 한 축을 이루는 "제2인자" 위치를 지켜 왔으나 이번 총선에서 교섭단체도 구성하지 못한 "군소 정당"의 수장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JP는 선거 당일인 13일은 물론 14일에도 신당동 자택에 머물면서 일절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있다.

측근들은 JP 특유의 칩거에 들어간 것 같다고 전한다.

절체절명의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는 대책 마련을 위해 "장고"에 들어간 것이다.

JP는 칩거를 통해 민주공화당, 신민주공화당에 이어 자신이 만든 자민련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한 묘방 찾기에 골몰할 것으로 보인다.

JP는 위기에 몰릴 때마다 활로를 모색, 그때마다 "3김시대"를 재개하는 등 정치적인 저력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지난 1988년 13대 총선에서 신민주공화당 간판으로 정치 재개에 성공했고 14대 때는 공화계 몰락이란 최악의 상황을 그복했다.

15대 총선에서는 자민련 깃발로 50석을 확보하는 등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지난 대선때는 국민회의와 자민련 연합공조라는 절묘한 카드를 만들어 헌정사상 첫 여야 정권교체의 일등공신이 됐다.

그만큼 정치 감각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금 JP의 상황은 예전과는 전혀 다르다.

정치적 기반인 충청권이 무너진데다 곧 불어닥칠 "3김 청산" 바람이 의외로 거세질 것이라는 분석에서다.

당 내부에서도 벌써부터 "충청권에서 영향력이 사라진 지금 자민련에 올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의원들 스스로 제 갈 길을 찾아갈 것"이라며 JP의 명예퇴진 및 2선 후퇴를 주장하는 목소가 들린다.

더 나아가 "차라리 민주당과 합당하는 것이 편한 것 아니냐"며 합당론까지 거론되는 실정이다.

그러나 측근들은 JP가 특유의 정치력을 발휘해 활로를 찾아낼 것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당의 한 고위관계자는 "올 가을 대선정국이 시작되면 17개 의석을 갖고도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상대로 캐스팅보트 역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내년 본격적인 대선 정국에 돌입하게 될 때까지 자민련의 명맥만 유지할 수 있다면 그때 가서 합당 등 "빅딜"을 모색하는게 최선의 대안이 된다는 것이다.

JP도 그 쪽에 무게 중심을 두고 대안 마련에 주력할 것이란 설명도 곁들인다.

JP는 또 교섭단체 구성이란 "최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국당과의 당대당 통합, 한국신당의 김용환 의원 영입 등 다양한 방법을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앞서 JP는 총선 참패로 동요하고 있는 당 수습에 전력을 다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당장 지도부 인책론이 대두되거나 JP의 장악력에 실망한 당선자들이 탈당하는 사태가 빚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2백여명에 달하는 유급 사무원들의 처리문제도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어쨌든 현 단계에서 JP가 정계 은퇴의 길을 모색할 것 같지는 않다.

민주당과의 공조복원이나 한나라당과 사안별 협력 등을 놓고 저울질하면서 자민련의 명맥을 유지하는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김형배 기자 khb@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