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 지금 안계십니다. 서울 출장중이십니다"

뉴욕 교포사회에서 요즘 흔히 들을 수 있는 얘기다.

교포사회에서 행세 좀 한다는 유지들 중 상당수가 최근 서울에 다녀왔거나,서울에 여행중이다.

한달도 남지 않은 한국의 총선 때문이다.

"미국에 이민가서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이 웬 한국 총선 바람이냐"는 물음이 나올 법 하다.

하지만 미국에 와서 자리를 잡고 경제적 여유를 갖게 된 이민 1세대들이 현지 사회에 동화되기보다는,"떠나 온 나라"에 대한 미련이 더 많아지는 게 인지상정인지도 모를 일이다.

더구나 뉴욕에 이민 와 의류나 가방 비즈니스 등으로 기반을 닦은 뒤 본국에 "역이민"해 유명 정치인으로 출세한 사례도 한 둘이 아닌 터다.

뉴욕 교포사회의 한 켠에서는 이런 "본국 정치바람"과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에피소드들도 흘러나오고 있다.

그 중의 한 토막.

이달 초 뉴욕주에서 미국 대선 공화-민주당 예비선거가 열렸을 때의 일이다.

어느 당의 후보가 한국인 밀집 지역인 뉴욕시 플러싱을 방문해 유권자 초청 행사를 열었다.

그러나 이 행사에 참석한 한국계는 단 3명 뿐이었고,이웃 타운에서 찾아온 중국계는 1백명이 넘었다고 한다.

"한인 표심"을 붙잡기 위해 마련된 행사에 엉뚱하게도 화교들이 주인 행세를 한 셈이었다.

지금 살고 있는 자기 나라(미국)의 선거에는 관심도 없이,떠나온 나라의 정치판을 기웃거리는 한인들의 모습이 미국 주류사회에는 어떻게 비쳐질까.

한인들의 미국 이민 역사는 벌써 1백년을 헤아리고,미국내 인구도 2백만명을 넘어선지 오래다.

그럼에도 미국의 중앙 정치무대에 배출한 인물은 김창준 전 연방 하원의원 한사람 뿐이다.

그나마도 한인 사회의 갖가지 추문에 휘말린 끝에 4선의 벽을 넘지 못하고 낙마해야 했다.

주지사와 연방 의원들을 단골로 배출해 하와이를 "일본 제 5의 섬"으로 만들었다는 소리를 듣는 일본계나,지난번 주지사 선거에서 워싱턴주지사를 낸 화교들의 얘기는 "부러운 이웃 얘기"일 뿐인가.

국경없는 글로벌 경제전쟁 시대에 해외 이민들을 최대한 현지 사회의 주류에 편입시켜 "훗날"을 도모하는 것과,이들의 향수를 자극해 본국 정치판에 이용하는 것 중 어느 쪽이 소망스러운지 우리 모두 생각해 볼 일이다.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 earthlin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