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이 이번에 발표한 "베를린 선언"에는 그동안 민간 수준에 머물렀던 남북관계를 정부당국간 대화로 이끌어 실질적인 남북 화해와 협력을 이루겠다는 의지가 담겨져 있다.

김 대통령은 현시점을 남북한 당국이 상호 "불신의 늪"에서 벗어나 명실상부하게 협력할 수 있는 틀을 짜야 할 때로 본 것이다.

그래서 김 대통령은 북한을 실질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이 우리의 참 뜻을 받아들여 지원을 요청할 경우 북한의 열악한 사회간접자본(SOC) 확충과 농업구조개선작업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현재와 같은 북한의 도로와 항만 철도 전력 통신등의 상황 아래선 투자를 하고 싶어도 할수 없다는게 제안의 배경이다.

특히 한국의 굴지 기업들이 투자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안전장치가 이뤄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 대통령은 남북한 당국간 투자보장협정과 이중과세협정을 체결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예컨데 현대가 추진중인 서해공단조성과 전자제품공장, 자동차조립공장등을 북한내에 건설하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안전장치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서해공단의 경우 한국의 중소기업 8백여개 회사가 입주해야 하나,현재와 같은 대북 투자여건 하에선 선뜻 투자에 나서는 업체는 많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적은 자본으로 투자적지를 찾아다니는 중소기업이 투자보장협정이 없는 북한을 택할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다.

남북문제를 국제사회가 관심을 갖게 한 것도 이번 선언의 특징이다.

김 대통령이 통일독일을 방문한 자리에서 "베를린 선언"을 한 것은 이런 점을 감안했기 때문이다.

지구상에서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한반도 냉전구조를 해체하고,남북평화 정착을 위해선 남북당국자간의 대화 못지 않게 국제사회의 관심도 중요하다는게 김대통령의 인식이다.

이날 발표된 내용은 기존 대북관계 원칙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우선 현단계에서 통일보다는 냉전종식과 평화정착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또 당국차원의 대화가 기본이 돼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이를 북한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민간경협을 중단하는등의 조치는 취하지 않는다고 했다.

김 대통령의 이번 제의가 실효를 거둘 수 있을 것이냐는 북한의 태도에 달려있다.

북한당국이 그동안 국제무대에서 보여온 입장을 감안할 때 당장 이를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베를린=김영근 기자 ygkim@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