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록지 않은 사람" "상당히 깐깐하다" "모시기 어려운 분"

박태준(TJ) 총리서리를 두고 하는 얘기들이다.

좋게 말해 간단치 않은 사람이라는 평이고 나쁘게 말해 까탈스러운 사람
이란 뜻이다.

TJ가 불모의 포항 영일만 일대를 일궈 세계 굴지의 제철소를 만들 때만
해도 그에게는 "철의 사나이", "포철신화의 영웅", "한국의 카네기"라는
수식어가 늘 붙어 다녔다.

승승장구하던 그가 1992년 민자당 대권주자 경선과정에서 반YS의 선봉에
섰다가 밉보여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부터는 "포철제국의 군주 제왕"
"군대식 경영자"였다는 부정적 이미지가 자주 부각됐다.

정치활동에 대한 점수도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정가에서는 TJ가 정치보다 오히려 행정에 적성이 맞아 총리직을 잘 수행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정치거물로 자리매김돼 있는 그를 경제총리로 표현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TJ는 1948년 육사 6기로 군에 투신, 당시 육사교관이던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어 5.16직후 최고회의의장 비서실장을 지냈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산파역도 맡았고 일본 중학교와 대학교를 나온
경력을 활용, 한.일 국교정상화의 막후 교섭역으로 활약했다.

육군소장으로 예편한 후 1964년에는 대한중석 사장을 맡아 만성적자에 허덕
이던 회사를 흑자로 전환시키는 경영수완을 발휘, 사장직에서 물러날 때
회사로부터 지금 살고 있는 북아현동 자택을 기증받기도 했다.

포철 회장은 1968년부터 맡았으며 1992년에 세무조사를 받고 탈세와 뇌물
수수 혐의로 포철 명예회장에서 물러났다.

이후 4년여간을 쫓겨나다시피 해외 유랑생활을 했으며 모친의 임종조차
보지 못하는 비운의 시절을 보냈다.

97년 5월 귀국한 TJ는 그해 7월 포항북 보궐선거에 당선돼 재기한뒤 11월
자민련에 입당, 총재 자리까지 올랐다.

특히 DJP 후보 단일화 협상을 이끌어내 국민회의.자민련 공동정권 창출의
1등 공신이 됐다.

부인 장옥자(69)씨와의 사이에 1남4녀를 뒀다.

지금은 아니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과 한때 사돈지간이기도 했다.

<> 약력

<> 경남 양산(72)
<> 일본 와세다대 기계과.육사 졸
<> 최고회의 의장 비서실장
<> 대한중석 사장
<> 포항종합제철 사장.회장
<> 철강협회장
<> 11,13,14,15대 의원
<> 민정당 대표위원
<> 민자당 최고위원
<> 자민련 총재

< 한은구 기자 tohan@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