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현대 명예회장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간의 면담을 계기로 현대가
추진중인 서해공단 개발사업은 한층 탄력이 붙게 됐다.

지난해 10월 정 명예회장과 김 국방위원장간의 첫번째 면담에서 현대는
금강산관광 사업권을 따냈다.

이번 두번째 면담을 통해 현대는 서해공단 개발과 관련된 구체적인 합의를
얻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정몽헌 현대회장은 방북 전 "경제특구방식으로 서해공단을 개발하기로
북측과 원칙적으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결국 서해 공단사업은 북한 최고지도부의 재가만 남은 상태였으며, 이것이
김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성사로 "확약"을 받은 셈이다.

서해 공단조성은 또 추진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남.북한 당국간 대화를
촉진시킬 전망이다.

공단조성과 입주 등에서 민간이 아닌 당국간에 해결돼야 하는 문제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우선 공단 조성을 위해선 물자와 인력이 수송돼야 한다.

그러나 현재 육로는 군사분계선 때문에, 해로는 북방한계선(NLL)으로 막혀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당국간 대화가 필수적이다.

공단이 완공된 이후에도 국내 기업들이 실제 투자에 나서기까지는 투자
보장협정 등의 안전장치들이 마련돼야 한다.

역시 당국간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서해공단개발이 북한의 변화 그 자체를 촉진시킬
것이라는 점이다.

북한은 현대와의 금강산관광 사업을 통해 "달러는 벌되, 사상오염은 막는
"제한적 경협을 경험했다.

또 이를 통해 개방정책이 북한내 경제난을 해소하는데 실질적 도움이
된다는 점을 "학습(learning)"했다.

서해공단개발은 이같은 학습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서해공단 개발이 추진된다고 북한이 "중국식" 경제개방정책을 수용
했다고 보기는 이르다.

북한 입장에서 사상오염을 막는 것은 체제 수호의 사활적 문제다.

경제개발을 포기하더라도 체제는 지키겠다는게 북한의 기본 노선이다.

더구나 북한의 땅덩어리가 중국보다 훨씬 협소하고, 따라서 체제유지
비용이 더 많이 든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식 개방모델"로 이행하는 것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른바 "개방은 하되, 모기장은 친다"는 정책이다.

또 북한의 "통민봉정(민간과는 협력하되, 남한정부와는 대화하지 않는다)"
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북한이 서해공단 개발의 각 단계별로 보다 까다로운 조건들을 제시하며
공단조성 사업 자체를 질질 끌 우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단개발은 북한내에서 경제 고유의 메카니즘을 촉발
시킬 것만은 분명하다.

북한이 현대와의 경협과정에서 경험한 "단맛"을 무시하고 다시 과거로
역행하기 힘들다는 분석은 이래서 나온다.

정부 당국자들은 서해공단 사업이 남북관계개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선
대체로 신중론을 펴지만 공단개발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지렛대" 역할
을 할 것만은 틀림없다.

< 이의철 기자 ec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