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장/민주/복지의 선순환 ]

김태동 <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

15일 광복절 기념식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경축사를 통해 한국이 새천년을
올바로 맞이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하여야 하는가를 소상하게 밝혔다.

경제에 관해서는 재벌개혁을 강조하고 인간개발 중심의 생산적 복지정책을
내세운 것이 특히 눈에 뛴다.

"저는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재벌을 개혁하고 중산층 중심으로 경제를
바로잡은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는 말은 결연한 의지를 느끼게 한다.

돌이켜 보면 1년반 안에 외환위기를 극복하겠다는 당선후 약속은 6백억달러
가 넘는 외환보유액을 바탕으로 어느 정도 지켜졌지만 또 하나의 약속, 즉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병행발전 시킨다는 약속은 그동안 뜻한 대로 진척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절반의 성공"이라는 자평이 나왔는지 모른다.

이는 대통령 개인의 잘못이라기보다 현정부가 물려 받은 초기조건(initial
conditions)이 너무 나빴기 때문이다.

6.25 한국전쟁후 최악의 위기상황에서도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거대야당,
그들과 합의해 정치개혁을 이룬다는 일은 지난하다.

관치경제와 정경유착의 하수인 역할에는 익숙하지만 개혁에는 문외한인
관료층에 새로운 패러다임인 DJ 노믹스에 기초한 경제개혁을 맡겼을 때,
개혁의 속도가 지지부진할 것은 불문가지다.

기득권을 잃지 않을 명시적, 묵시적 힘을 가지고 있는 5대 재벌을 공정경쟁
의 틀에 넣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기득권층의 반대와 방해를 더한층 굳은 의지와 리더쉽으로
극복하면서 민족의 저력을 모아 ''희망과 번영의 새천년''을 기필고 열어가자는
것이 경축사가 던진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21세기는 정보화의 시대요 지식경제의 시대이다.

물적자본보다는 사람의 머릿속에 있는 인적자본(human capital)이 훨씬 더
중요한 우리의 밑천이 되는 시대이다.

학교 교육의 질이 높아져야 하고, 온 국민이 학력 고하에 연연하지 말고
평생 능력개발을 하여야 한다.

이렇게 경제주체가 능력개발(enabling)을 쉽도록 하는 것이 생산적 복지
정책의 핵심이다.

서구 선진국에서는 소비적, 사후적 복지에 매달리다 상당수 국민이 일할
의욕을 상실해 자립능력을 잃고 나라의 국제경쟁력까지 추락하는 경우를
우리는 보아 왔다.

20세기에 갖추었어야 할 빈곤층의 기초생활보장을 서두르는 동시에 21세기
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자는 것이 생산적 복지의 원대한 구상이다.

원래부터 DJ 노믹스에서는 생산적 복지가 중요 요소로 자리잡고 있었다.

선거전 97년 봄 출판된 "21세기 시민경제 이야기"와 98년 가을 취임 6개월
뒤에 출판된 "국민과 함께 내일을 연다"에서도 독립된 장으로 취급되었다.

영국이나 독일의 현 집권당에서는 과거 자신들의 잘못된 정강정책을 반성
하면서 "제3의 길"이니 신 중도니 하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에 반해 국민의 정부에서는 과거정권의 성장지상주의에서 벗어나 DJ
노믹스의 바탕인 인본주의에서 나온 말이 생산적 복지인 것이다.

인간이 중시되는 생산적 복지공동체에서 편견이 없는 민주정치가 발전하고,
시장경제의 역동성이 유지될 수 있다.

또한 시장경제가 발전되어야 복지지출을 위한 재정수요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민주주의, 시장경제, 생산적 복지는 상호보완적이다.

따라서 성장을 위해 분배와 복지를 소홀히 하는 일은 국민의 정부에서 있을
수 없다.

광복절 경축사에서 제시된 비전에 따라 경제주체가 해야할 일은 명백하다.

먼저 정부 각 부처는 백화점식 항목나열을 지양하고 생산적 복지체계를
확립하며 재벌개혁을 가속화하는 일에 머리를 써야 할 것이다.

중소기업은 개선된 사업환경에서 대기업과 공정한 경쟁을 해 나가야 할
것이다.

대기업집단은 한보, 기아에 이은 대우의 사례에서 철저한 교훈을 얻어
스스로를 위하는 뼈깎는 구조조정을 해야 할 것이다.

금융회사는 돈을 꿔간 기업이 뭘 하는지 채권액이 큰 순서로 제대로 살펴
봐야 할 것이다.

봉급생활자와 서민은 공동체의식과 주인의식을 가지고 자기계발 노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각자 제 역할을 하고 다른 부문에 짐을 주지 않을 때, 경제에 선순환이
일어나고 밝은 미래가 열린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