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독자가 팩스를 보내왔다.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 여론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는 내용이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의 정치재개에 대해 "YS만 욕할 일이 아니다"는
주장이었다.

독자가 제기한 논리는 "상품의 수명과 품질은 소비자가 결정한다"는
철칙이었다.

예컨대 70년대 자동차와 90년대 자동차는 성능과 품질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차이가 많다.

소비자의 욕구(needs) 수준이 높아지는데 맞춰 기술을 개발하고 품질을
개선했기 때문이다.

만일 소비자의 욕구수준이 "자동차라는 것은 대충 굴러가면 됐지"하는
수준에서 만족했다면 오늘날 자동차라는 상품은 70년대와 비슷한 수준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YS의 정계복귀는 "국민대중이 불량한 정치상품을 스스로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자동차에 빗대어 설명했다.

정치인을 선택하는 국민의식 수준이 능력보다는 이름 석자만에 연연하게
때문에 작금의 상황이 벌어지는게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연극이 끝나면 배우가 무대에서 내려와야 하는데 아직도 박수치고 있는
관객이 많으니 무대에서 내려오고 싶은 마음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언론에 대한 따가운 비판도 있었다.

YS의 한마디에 온 나라가 시끌벅쩍한 것은 언론이 앞장서서 그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는 지적이다.

사실 언론이 취재경쟁을 벌이며 YS의 일거수 일투족을 상세히 보도하고
한나라당과 상도동간 내분을 기사화하며 사태를 확대재생산한 측면이 있기도
하다.

30여년전 부터 지속되어온 지역감정 밀실야합 편가르기등에 길들여져 있고
그런 "보스"들에게 여전히 줄대기가 성행하는 것도 사실이다.

국민들 역시 그런 구세대 정치인들을 선거를 통해 걸러내기 보다는
"인물이야 썩었건 말건 우리동네 사람이 돼야지"하며 투표해온게 지금까지의
관행이기도 하다.

정치개혁을 부르짖는 "젊은 피"들이 이번 사태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국민회의 초.재선 의원들로 구성된 "푸른정치모임"은 당 지도부에서
대응하지 말라고 지시한 때문인지 지금까지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한나라당 초.재선 모임인 "희망연대"는 오히려 YS와 연대론을 제시하는 등
한술 더 뜨고 있다.

대다수 국민들은 YS의 정계복귀가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것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 어디 YS만 탓할 일인가.

누워서 침뱉는 것 같은 우리 현실이 서글프기만 하다.

< 정태웅 정치부 기자 redael@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