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단행된 개각은 이례적으로 대체적인 시기와 폭이 예고됨에 따라
분분한 관측을 낳았을 뿐만 아니라 막판까지 유임과 교체가 엇갈리는 등
많은 얘깃거리를 남겼다.

<>.김대중 대통령은 24일 오후 청와대에서 신임장관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제1기 내각은 하드웨어를 마련한 내각이라면 제2기 내각은 보다 원활한
행정을 위해 소프트웨어를 강화하는 내각"이라며 제2기 내각의 중요성을
강조.

김 대통령은 이날 신임장관들의 부부가 참석한 가운데 임명장 수여식을
가진뒤 다과회를 열고 "이번 내각은 제2기 내각이라고 부를수 있으며 제1기
와는 기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대통령은 특히 "제1기 내각은 집권해서 정치적 안정을 이루고 개혁도
큰틀에서 마무리 짖는 거친 면이 있었다"며 각료들에게 보다 매끄러운
일처리를 당부.

특히 정치인 장관을 대거 교체한 것과 관련, "정치인 출신이 내각에 있다
보면 선거를 앞두고 (정당의 이익에) 말려들기 쉬우므로 행정부가 일관성
있게 개혁을 이루기 위해 이같은 개각을 단행했다"고 설명.

김 대통령은 이와함께 "나는 여러분의 선두에 서서 모범을 보이겠다"며
지역감정 부정부패 등에 휩쓸리지 않고 국정을 수행해 줄것을 당부했다.

<>.김중권 청와대비서실장은 24일 개각 내용을 발표한 뒤 "김대중 대통령과
김종필 총리가 의논한 명단대로 됐으며 어제 밤에 바뀐 인물은 없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그러나 "지난 22일 부터 통보를 시작했으나 3~4명은 늦게 결정돼
어제 밤 11시까지 통보했다"고 밝혀 막판 진통이 적지 않았음을 시인했다.

실제 김 실장은 23일 밤 늦게까지 김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김 총리와
몇차례 접촉하며 3~4명에 대한 인선문제를 최종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국방 교육 문화관광부장관 등은 유임.교체설이 엇갈렸다.

일부 정치인 출신 장관이 의원직을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보이며 유임을
강력히 희망한 것도 인선에 진통을 겪게 한 요인이 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통령도 이해찬 교육, 신낙균 문화관광부장관과 박지원 청와대공보수석
등에 대해 "애착"이나 "아쉬움"을 가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개각에서 통일부장관으로 기용된 임동원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이미 내각 진입이 시간문제인 것으로 인식돼 왔다.

임 장관도 평소 나이탓(65세)을 하면서 수석비서관 보다는 일선에서 장관
으로 정책을 집행하고 싶다는 속내를 자주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일부에선 "대북정책의 레일이 아직 완전히 깔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집행 책임을 맡기에 다소 이르다는 지적도 있었다.

보수여론에 대한 "방패" 차원에서 강인덕 전 장관의 역할이 아직 유효
하다는 논리였다.

또 임 장관과 강봉균 재경부장관,박지원 문화관광부장관 등 청와대 수석
비서관 출신 3명은 지난 21일께 김 대통령이 불러 각료 인선을 통보하는 등
특별한 "배려"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가정보원은 24일 이종찬 원장이 경질될 것이라는 소식에 착잡해 하는
분위기였다.

특히 국정원은 이 원장이 구 중앙정보부 출신이어서 누구보다 국정원을
이해하고 개혁하는 적임자로 여겨왔기 때문.

국정원은 이 원장 후임에 천용택 국방부장관이 유력하다는 여론에 나름대로
정보채널을 가동해 청와대의 의지를 파악하느라 부산한 모습이었다.

국정원은 천 장관이 후임자로 확정되더라도 그가 "안보통"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인 입지보다는 대통령의 개혁 의지 실천에 비중을 둘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 환영하는 분위기다.

<>.국민의 정부 출범과 함께 입각한 장관 중에서는 김성훈 농림부장관이
유일하게 유임됐다.

김 장관의 유임 이유에 대해 농림부 안팎에서는 우선 농.축협 등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협동조합의 개혁 작업을 뚝심있게 추진해온 점이 평가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아들 병역문제,고관집 절도사건 등에 연루돼 어려움을 겪었지만 김
장관의 결백이 입증됨에 따라 오히려 도덕성 측면에서 플러스 요인이 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