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책은 직접 챙기겠다"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초부터 이 말을 충실히 실천했다.

경제부총리를 없애는 대신 경제대책조정회의를 직접 주관하면서 주요한
정책을 지시했다.

지난해 2월 정부조직개편의 초점도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정책수단을 직접 통할토록 하여 국정운영의 효율화를 도모하고 국정
리더십 역량을 강화"하는데 맞춰졌다(98년 정부조직개편백서).

대통령이 경제회생에 깊은 관심을 가진 덕분에 긴박했던 외환위기상황을
쉽게 벗어날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이후 1년동안 경제정책이 집행되는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대통령의 경제리더십이 강화된 이면에는 지위가 같아진 부처장관들 사이에
혼선과 각축전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지난해 3월11일 첫 경제대책조정회의에서는 이기호 노동부장관이 이자소득
에 실업세를 물리는 방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금리인상의 효과가 있다"는 반론이 제기돼 국무회의에 상정된
안건이 부결되는 전에 없던 일이 벌어졌다.

더욱 놀라운 것은 노동부가 세제를 담당하는 재경부와 한마디 상의없이
회의 전날밤 팩스 한장을 달랑 보내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재경원시절이라면 상상조차 할수 없던 일이었다.

예산권과 금융감독권 경제정책을 한 손에 쥔데다 부총리급인 재경원장관을
통하지 않고는 국무회의는 커녕 경제차관회의에 조차 상정할수 없었기 때문
이었다.

지난해 3월26일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에서는 외부감사법시행령
개정안이 돌연 보류됐다.

공정거래위원장이 결합재무제표 작성대상에서 법정관리기업을 제외하면
제도의 실효성이 없어진다며 제동을 걸었다.

차관회의까지 거친 안건을 대통령이 보류시킨 것은 드문 일이었다.

바로 다음날 청와대에서 열린 무역투자진흥대책회의에서는 산업자원부가
30대그룹에 무역금융을 재개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WTO(세계무역기구) 협약에 어긋난다는 재경부의 제동으로 백지화
됐다.

재경부 위상이 추락한 것을 계기로 부처간 정책혼선이 시작된 것이었다.

이후 공정위의 포항제철 분리매각방안 발표와 금융감독위원회의 지급보증
맞교환 허용방침 발표, 재경부의 외국인토지법 폐지검토 등이 주무부처와
충분한 협의과정없이 줄줄이 터져 나와 갈등을 빚었다.

산자부장관이 수출지원에 소극적이라며 대통령앞에서 재경부를 "고자질"하는
사례도 있었다.

장관들이 대통령에만 의존할 뿐 부처간 협의를 소홀히 한 결과다.

국무회의에 안건을 상정조차 하지 않았던 국민연금확대문제도 마찬가지
경우다.

미국의 경우에도 대통령이 경제정책자문위원회(NEC)를 주재하는 리더십을
발휘하지만 NEC 산하에 장관급 위원회(PC) 차관급위원회(DC)와 실무자협의
등을 두고 단계별로 충분한 조율과정을 거치는 것과 비교된다.

이에따라 경제정책조정기능강화를 주장하는 소리가 많다.

엄봉성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원장은 "부처간 균형이 잘 안맞고 기능이
여러 조직에 분산돼 있어 종합조정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외국어대학교 황성돈 교수는 경제장관과 민간인이 참여하는 "자유시장경제
구축회의"를 신설, 정책종합기능을 맡기고 사무국기능을 기획예산위를
확대개편한 기획관리예산처에서 맡도록 하자고 주장했다.

지난해 한국경제연구원 등 6대 민간경제연구소는 부총리제부활을 공동건의
했다.

그러나 정부조직개편안을 심의조정하는 경영진단조정위원회의 위원장인
오석홍 서울대 행정대학원교수는 부총리라는 직급에 의존하기 보다는 통합적
인 정보관리를 통해 부처간 협조가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옛 재경원처럼 종합조정을 담당하는 부처가 독주를 하도록 해서는 안된다는
데에는 의견이 일치해 있다.

지난 97년 외환위기가 임박했을 때 강경식 당시 부총리가 21세기 국가과제
강연및 금융감독법 처리에 몰두했지만 정부내에서 누구도 이를 제지하지
못했던 전철을 밟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 김성택 기자 idnt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27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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