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529호 "난입사건"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여야 대치국면이 한치 앞의
정국도 내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심화되고 있다.

여야 모두 "공존"을 포기한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여권은 4일 국민회의 자민련은 물론 청와대까지 가세, 난입사건을 "국기
문제"로 규정하면서 관련자 전원에 대한 엄정한 사법처리를 공언하고 나섰다.

이와 함께 임시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도 한나라당이 협조하지 않을 경우
여당 단독으로 처리하겠다는 강경 입장을 정리했다.

이번 회기 내에 다루지 않기로 했던 비리혐의 정치인들에 대한 체포동의안도
선별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했다.

야권에 대한 전방위적 압박작전에 들어간 셈이다.

한나라당은 이날 이회창 총재의 긴급 기자회견 등을 통해 김대중 대통령의
사과와 재발방지, 이종찬 안기부장의 파면 등을 촉구했다.

이와 함께 장외투쟁을 포함한 법적.정치적인 전면 투쟁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여야의 이같은 강경 입장 천명은 그러나 국민여론을 자기편 쪽으로 끌기
위한 "총력 홍보전"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야 모두 안기부 요원들이 국회에 사실상 상주해온 사실을 오래전부터
익히 알고 있었다.

또 언론이 지켜보는 가운데 미리 예고된 상황에서 사무실을 파손했다는
것도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처벌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 한나라당은 이를 잘 모르고 있는 다수의 국민들에게
"현정부에 와서도 정치사찰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켜 김대중
대통령의 도덕성을 훼손시키겠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국민회의 등 여권은 이같은 부담을 덜기 위해 한나라당의 "불법난입"을
시대착오적인 반 민주적 행위로 몰아부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여야 간에 "529호 사건"에 대한 정치적 절충이 의외로 쉽게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은 이같은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지만 여야가 서로의 감정을 자극하는 현재와 같은 상황이 계속될 때에는
걷잡을 수 없는 파국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 양승현 기자 yangsk@ >

[ 여권 ]

청와대와 국민회의 자민련 등 여권은 4일 국회 529호실 사건을 놓고 벌어
지고 있는 여야 대치 국면을 "강수"로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내비쳤다.

박지원 청와대대변인은 이날 "국가기밀 불법탈취 사건은 국기 문제이기
때문에 국가기관에서 법에 의거해 철저하고 강도 높고 빠르게 조사를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 대변인은 이어 "이번 사태는 한나라당이 정국 돌파용으로 당리당략적
사고에서 만들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며 "법이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변인은 "529호실은 국회에서 정보위가 만들어진 지난 94년 정보위
열람실로 만들어졌고 96년 국회 예산 2억원을 들여 보안장치까지 한 곳"
이라며 "이를 불법적으로 파괴, 국가기밀 문건을 탈취.공개하는 것은 국기
문제"라고 거듭 강조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국회 연두교서 발표 계획과 관련해서도 "연두교서를 발표
하겠다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으나 만약 (국회 사정으로) 어렵다면 이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강경기류를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김중권 청와대 비서실장은 그러나 "한나라당이 불참하더라도 국민을 상대로
연두교서를 발표할 것"이라고 말해 여당 단독국회에서라도 연두교서를
발표할 방침임을 밝혔다.

국민회의 조세형 총재권한대행은 "명백한 실정법 위반인 만큼 이번 사건을
음모, 지휘하고 행동한 사람이나 부화뇌동한 인사들을 모두 색출해 법의
이름으로 다스려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 대행은 이날 당사에서 있은 시무식에서 "어떠한 정치적 난관이 있더라도
국가의 권위를 세워야 하며 이에 따라 이 사건을 절대로 묵과할 수 없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조 대행은 "이번 사건은 여야간의 정치싸움이 아니라 법의 문제"라면서
"문건 내용 중 정치공작의 일이 있다면 책임을 져야 하겠지만 지금까지 나온
것은 정치 공작적 수준의 내용은 전혀 없는 만큼 한나라당은 준엄하게 책임
을 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자민련도 국민회의와의 공조에 나섰다.

박태준 총재는 이날 "국회 사무실에 불법 난입해 국가 기밀문서를 탈취한
것은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될 수 없으며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
이라고 말했다.

< 김남국 기자 nkkim@ >

[ 야권 ]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4일 여의도 당사에서 "국회 529호실 개방"과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정치 생명"을 걸고 이번 사태에 임하겠다는 각오를
피력했다.

이 총재는 "국민앞에 무릎꿇고 사과해야 할 것은 현 정권"이라며 "요구사항
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모든 정치적, 법적 투쟁을 벌여나가고 상황 전개에
따라 장외 투쟁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또 "현 정권이 정치사찰과 정치공작을 자행해 놓고 이를 밝혀낸
우리의 행위를 국가기밀 탈취니 국법질서파괴니 하며 덮어 씌우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내각제 저지 대응책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는 전형적인 정치공작에
해당한다"며 "안기부의 정보수집이 실제 정치인의 정치활동을 압박하는 정치
목적으로 활용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더라도 이를 예견할 수 있으면 정치사찰
에 해당한다"고 규정했다.

이 총재는 국회 529호실에서 입수한 문건중 아직 미공개된 47건의 공개여부
와 관련, "조만간 야당의원 사찰내용 등 모든 것을 숨김없이 공개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여권이 단독국회도 불사하겠다고 천명한데 대해 "국회활동을
전적으로 배제하지는 않겠지만 야당이 원내활동을 할 수 있는 상황을 여권이
만들어야 한다"며 "민주적 폭거에 해당하는 억지 단독국회는 이뤄지기 어려
울 것"이라고 못박았다.

이 총재는 특히 실정법을 위반하면서 물리력으로 529호실을 개방한데 대해
"매우 안타깝고 가슴아픈 순간이었다"며 "좀 더 큰 국가의 이익인 헌정질서
파괴행위를 막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당시 취재진를 봉쇄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좁은 방에 여러사람이 들어가
혼잡하게 비춰질 우려가 있었다"며 "충분한 양해를 구하지 못해 아쉽고 미안
하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 총재는 이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와 관련, "문을 연 데 대한 모든
책임은 총재인 제게 있으며 그 모든 책임은 제가 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검찰의 수사는 사건의 본질을 호도하기 위한 것"이라며 "국가기관
수사활동이 공정하지 않으면 국민의 저항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 한은구 기자 toha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