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했던 정치권은 결국 "역시나"였다.

총풍.세풍이니 표적사정이니 하며 연중 내내 극한 대립을 벌였던 여야는
한해를 보내는 마지막 날까지도 싸웠다.

국회내 "안기부 분실"존재 여부로 야당의원들의 철야 농성사태까지 갔다.

새해 벽두에 들어서도 "안기부 분실 파손 및 문건탈취"문제로 여야간엔
브레이크 없는 정쟁을 지속될 게 뻔하다.

1월 임시국회에서는 민생.규제개혁 관련법안의 처리가 기대 되었지만....

혹자는 이야기한다.

국민의 고통을 아랑곳 않는 정치권의 의식구조가 문제라고.

또 어떤 이는 정치권만 욕할 것 없다고 말한다.

정치의 수준은 그 나라 국민의 수준을 반영하는 것이니까.

틀린 말들은 아니다.

그러나 이같은 논리는 한가지 중요한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

30년전 미국의 소도시에 조그만 이발소가 있었다.

오는 손님마다 문 옆에 달려있는 노란 플라스틱 번호표를 하나씩 뽑아들고
차례를 기다렸다.

구태여 줄을 서지 않아도 이 볼품없는 플라스틱 번호표 덕분에 질서가
유지됐다.

국내에도 일반화된 은행의 대기번호표 시스템은 바로 이것을 기계화한
것이다.

이 간단한 시스템 하나만 있으면 되는 것을 우리는 과거 수십년간 애꿎는
"국민의식" "정치의식"만 탓했다.

무질서나 "빨리빨리 증후군",심지어는 고비용 저효율 정치구조에
이르기까지 모두 의식구조가 문제인 양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상 모두 시스템 탓이었다.

의식은 시스템의 산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시스템이란 근본을 다스리지 않은 채 의식만
탓해온 꼴이다.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를 보고 싶다면 정치의 시스템을 그렇게
고쳐야 한다.

국회의원들에게 도덕교육을 시킨다고 이것이 해결되진 않는다.

시스템의 부실을 수리하는 것이 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다.

김남국 < 정치부 기자 nkki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