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낮 열릴 예정이었던 김대중 대통령과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간의 여야
총재회담은 성사 일보직전에 무산되고 말았다.

국민회의 한화갑, 한나라당 박희태 총무 등 여야수뇌부는 이날 밤 늦게까지
쟁점을 놓고 막바지 절충을 벌였으나 쟁점을 완전타결하는 데는 실패했다.

여야는 심야의 추가협상을 통해 여당이 한나라당의 인위적 정계개편 반대
요구를 수용하는 대신 청문회개최시기를 내달 8일로 명문화하는 선까지
의견을 접근시켰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야당지도부가 "판문점 총격요청사건에 대한 강압수사로 사실왜곡이
있어선 안되며 불법 감청고문 등 인권유린 행위를 근절키로 한다"는 내용을
발표문에 포함시킬 것을 추가로 요구하면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여야총재회담이 무산된 표면적인 이유는 이른바 "총풍" 등 정치현안에
대한 여야간 시각차가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론 경제청문회 실시시기, 나아가 개최여부에 대한 서로의
생각이 달랐던 데 원인이 있다는 것이 정치권의 판단이다.

여야는 총무접촉등을 통해 경제청문회를 오는 12월2일 새해예산안 합의처리
후 정기국회 회기내에 실시하자는데 잠정 합의했었다.

한나라당은 그러나 막판에 경제청문회를 회담 의제에서 제외하는 대신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 등 3개항을 의제에 새로 포함시킬 것을 주장했다.

국민회의는 이들 사건은 현재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사안인 만큼
"정치적 의제"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여권은 한나라당의 이같은 입장 변화가 경제청문회를 할 의사가 없음을
드러내는 반증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와관련, 한나라당 수뇌부는 여권의 경제청문회 강행방침이 현정권의
경제실정을 "과거 탓"으로 돌리기위한 고도의 정치적 계산으로 보고 있다.

야권은 또 청문회 개최가 자칫 과거 정권의 실정뿐만 아니라 현 야권에도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야권은 현정권에 "경제실정"의 면죄부를 주고 자신들에게 "독약"이
될 수 있는 청문회는 예산안 처리가 끝난 뒤 다시 논의하는 쪽으로 입장을
굳혔다는 관측이다.

여야간의 뿌리깊은 불신도 이번 총재회담 무산의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한나라당 입장에선 이번 총재회담을 계기로 당내 "이회창 체제"를 뿌리
내리고 당을 정상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있었다.

"총풍사건" 등을 회담의 의제로 넣자고 강경입장을 고수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막판에 여권이 총재회담을 그저 정기국회를 "조용히" 넘기기 위한
수단으로만 보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강하게 일면서 "둘러리를 설 수
없다"는 강경론이 힘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여야가 10일 오전 총무회담을 재개키로 함으로써 여야총재회담이 이날
전격적으로 이뤄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특히 정쟁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 국민들과 "여야총재간의 만남이 그렇게
힘드냐"는 여론의 비판도 상당한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무엇보다 여야가 아직은 서로를 "게임의 파트너"로서 인정하고 있는
분위기다.

김 대통령으로선 정기국회의 원만한 운영과 각종 경제개혁의 연내 매듭,
내년 봄까지 정치구조 개혁 마무리 등 야당측의 협력이 필요한 "청사진"을
실현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총재 또한 정치적 위상을 가능한한 빨리 확보해야 한다는 위기감이
있는 만큼 서로의 이해가 맞아떨어질 여지는 남아 있다.

따라서 10일 회담이 열리지 못해도 김 대통령의 중국 방문 이후 총재회담은
성사될 수 있을 전망이다.

< 이의철 기자 ec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