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교동 가신인 K의원은 요즘 의원회관에 가기가 두렵다.

10여명의 행정공무원들이 면담을 청하며 북적대기 때문이다.

거의 매일 이들을 되돌려보내느라 진땀을 흘린다.

학교선후배나 친인척은 물론 생면부지인 사람도 찾아온다.

느닺없이 의원회관으로 닥쳐들기도 하니 답답할 노릇이다.

이들은 대부분 정부기관이나 공기업에 한자리를 부탁하는 인사청탁자들이다

또 당내 인사뿐만 아니라 대대적인 인사태풍을 앞둔 정부부처 국과장급들도
많다.

자신이 호남출신으로 그동안 정부부처에서 인사불이익을 당했다며 선처를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국민회의 몇몇 핵심실세들은 대부분 사정이 비슷하다.

매일 인사청탁자들을 돌려 보내느라 골머리를 썩고 있다.

청탁자들이 의원회관이나 당 사무실은 물론 집에까지 찾아온다.

심한 경우에는 모 행정부처의 국장과 과장 고참서기관이 한꺼번에 모
당직자의 사무실에 모이는 경우도 있다.

서로 멋쩍어 하면서 좁은 공간에 줄을 서있는 모습을 흔히 본다는게
보좌관의 전언이다.

한 당직자는 "청탁자가 돈을 들고 오길래 입당해서 당에 헌납하라고
타일러 돌려보내느라 애를 먹었다"고 털어놓았다.

이 당직자는 아예 아파트 경비원에게 외부인사의 출입을 통제하도록
부탁해놨다.

"이때문에 요즘 만날 사람도 못만난다"는게 이 당직자의 푸념이다.

일부 인사는 아예 전화번호를 바꿔버린 경우도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 의원은 면담객들의 방문을 피하기 위해 아예
미국으로 떠날 예정이다.

미국에 유학중인 큰 딸을 만나기 위해서라지만 줄을 잇는 면담객들을
회피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김의원의 측근은 설명했다.

김의원은 추경예산안 등 이번 임시국회의 주요현안만 처리한 뒤 내주말께
미국으로 떠나 10~20일정도 머물 예정이다.

정부부처 1급인사와 정부투자기관인사가 끝난 뒤에 귀국하겠다는 뜻이다.

국민회의 K의원은 "청탁자들은 대부분 야당시절 전화한통 없었던 인사들"
이라며 "정부부처의 1,2급후속인사와 정부투자기관 및 공기업인사를 앞두고
청탁을 하니 답답한 노릇"이라고 말했다.

김대통령의 한 측근의원은 "김대통령이 청와대로 들어갈 때 당직자들에게
인사문제에 개입하지 말 것과 돈문제를 조심하라고 강조했다"며 "이 두가지
얘기를 해주면서 청탁자들을 설득하고 있으나 대부분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돌아간다"고 말했다.

자민련의 실세 K의원도 매일 사무실에 수북하게 쌓인 전화메모를 보며
면담을 회피할 궁리부터 찾는다고 전한다.

<최명수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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