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화 국면으로 치닫던 여야대치 정국에 청신호가 커졌다.

한나라당이 11일 정치현안과 추가경정예산안 등 민생문제를 분리 처리
하겠다는 입장을 정리해 국회정상화의 돌파구를 찾았기 때문이다.

여야는 이날 오후 열린 총무회담에서 국회정상화 방안에 합의하지 못했지만
빠르면 주말부터 추경예산안 심의에 착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경제는 살리고 보자는데 여야가 인식을 같이해 13일 다시 열릴 총무
회담에서는 의사일정 등에 합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나라당이 국민회의가 요구해온 "정경분리"원칙을 전격 수용한 것도
정치가 경제를 볼모로 삼고 있다는 여론의 비판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육책
으로 봐야 한다.

국회파행의 원인제공자가 따로 있지만 "경제"를 내팽개칠 경우 비난은
야당이 뒤집어쓸 수 밖에 없는 형편을 감안한 셈이다.

특히 강경 초.재선 의원들이 당을 좌지우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한나라당으로서는 지도부가 경제문제를 명분으로 당운영의 주도권을 다시
거머쥐면서 강성 기류도 누그러뜨리는 의도도 엿보인다.

한나라당은 그러나 추경심의에 들어가면서 정부여당의 "무능"을 집중
공격할 방침이다.

한나라당이 민생문제를 외면하고 당리당략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여권의
비난공세와 관련,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민생관련 법안은 단하나도 없다며
정부여당의 "직무유기"를 질타하겠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또 김종필 총리서리체제의 위헌문제에 대해서는 타협의 여지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김총리서리의 자진사퇴만이 정국을 완전 정상화시키는 유일한 길이라는
얘기다.

주양자 보건복지부장관 등 일부 각료들의 부동산투기의혹도 계속 걸고
넘어질 계획을 세워놓고 있는 것도 김총리서리 대책의 일환이다.

장관이 경질될 경우 총리서리는 제청권이 없어 장관을 공석으로 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인사청문회 실시의 당위성을 거듭 제기할 방침이다.

여권은 한나라당이 입장을 선회한데 대해 환영의 뜻을 표시하면서
김총리서리문제 등 정치현안에 대한 일괄타결 가능성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민회의는 이날 지도위원회의에서 추경예산안을 처리한뒤 김총리서리
국회임명동의와 북풍공작 경제청문회 등 핵심쟁점을 여야중진회담을 통해
일괄타결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또 정부조직개편과 환율 경제성장률 등 거시지표 조정에 따라 몇개월뒤
추경을 다시 편성할 예정인 만큼 이번 임시국회에서는 지난번에 제출된
추경을 처리하도록 한나라당을 설득키로 했다.

자민련내에서는 김총리서리의 입장을 고려해 "정경분리 불가" 목소리가
없지 않으나 총리임명동의안은 반드시 재투표에 부쳐야한다는 당론을 재확인
하는 선에서 한나라당 방침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여야간 정경분리 원칙합의를 계기로 여권이 지난 2일
국회본회의에서의 표결저지 행위에 대해 사과하는 대신 한나라당은 재투표를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대타협하는 물밑 절충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김삼규.남궁덕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