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정부의 예산편성담당 기구를 "기획예산위원회"와 "예산청"으로 분리
설치키로 합의함에 따라 이들 두 기구간의 역할분담과 역학구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대통령직속기구로 설치되는 기획예산위는 앞으로 김대중 대통령당선자
의 재정개혁 산실이 될 것으로 보여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기획예산위는 우선 예산편성지침을 작성, 실무집행 기구인 예산청에 하달
하는 역할을 한다.

국가 살림살이에 대한 전반적인 규모 등 "큰 그림"을 기획예산위에서
그리는 만큼 위상도 막강할 것으로 보인다.

김당선자는 국제통화기금(IMF)관리 체제에 따른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기획예산위를 통해 모든 예산을 "제로베이스"에서 새로 작성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돼 주목을 끌고 있다.

김당선자로서는 예산위의 "힘"을 빌어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재정개혁과
행정개혁의 모델을 현실화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셈이다.

국민회의 박상천 총무는 이와관련, "당초 기획예산처를 대통령직속 기구로
설치하려 했던 것은 예산권한을 독점하자는 것이 아니라 강도높은 재정개혁
을 추진하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박총무는 "재정개혁이 없이는 IMF 위기체제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이
김당선자의 생각"이라며 "기획예산위가 작성할 예산편성 기본지침에서
새정부의 의지가 구체화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예산편성에 대한 잘못된 관행이 깨질지도 관심이다.

과거 예산안에 대한 국회심의과정은 사실상 지역구 의원들의 "나눠먹기"
과정이었다는 점에서 이같은 구태가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일고 있다.

재경부 산하에 설치되는 예산청은 실제 예산편성과 집행.감독 기능 등
실무적인 권한을 갖고 있지만 기획예산위의 지침에 따라 예산안을 편성하는
만큼 그 역할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예산청을 재경부 소속의 실.국 등으로 두지 않고 독립외청으로 설치하는
등 재경부장관의 "입김"을 최소화하려고 애쓴 흔적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기획예산처의 기능분리로 정부조직개편심의위가 마련한 직제도 큰 폭의
손질이 불가해졌다.

정개위는 당초 기획예산처에 예산실과 재정기획국 정부개혁실 등 3개
실.국 및 2개단, 14개 과와 7개팀을 설치하기로 결정했었다.

정개위의 안을 기초로 할 경우 예산관련 기획 및 조정업무를 맡는
재정기획국과 정부개혁실 등은 기획예산위 소속으로, 예산실을 비롯한
예산총괄과 예산관리과 산업예산과 등 실재 예산편성을 담당하는 실무
과들은 예산청 소속으로 분리될 수 밖에 없다.

여야는 이날 또 당초 환경부 소속으로 하기로 했던 산림청과 국립공원관리
공단을 각각 농림부와 행정자치부로 소속을 변경했으며 중앙인사위 신설이
백지화됨에 따라 공무원의 인사관련 기능은 행정자치부가 맡도록 했다.

현재 문체부 소관인 마사회는 농림부로 소속이 바뀌게 됐으며 1급으로
하향조정될 예정이었던 조달청 병무청 농업진흥청 산림청 등은 차관급으로
위상을 회복했다.

이와 함께 여권은 한나라당의 관광청 신설 요구를 일부 수용, 문화부를
"문화관광부"로 확대 개편했다.

쟁점사항중 하나였던 통상담당 부처는 한나라당이 별도의 대외통상부
설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당초 안대로 외교통상부가 발족하게 됐다.

여야의 이날 대타협으로 새 정부 출범은 일단 순조로운 출발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행정개혁과 재정개혁 등을 담당할 "주역"들이 기획예산위원장
정책기획수석 경제수석 등으로 분산.중복돼 있는 만큼 이같은 "비효율성"을
극복하는 것이 새정부의 또 하나의 과제로 떠올랐다.

<이건호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