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23일 한.일 어업협정의 일방 파기 방침을 우리정부에 통보해 왔다.

지난해 5월이후 열린 10차례의 개정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져 이같은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며 우리측에 책임을 떠넘겼다.

그러나 실상 한.일 어업협정의 개정은 마지막 절차만을 남겨 놓은 상태였다.

지난해 12월초 일본은 고무라 마사히코 외무성차관에게 전권을 부여하고
유종하 외무장관과 회담을 갖도록 했다.

이 자리에서 두 대표는 배타적 권리가 인정되는 전관수역을 35해리로 하고
어업협정이 적용되는 동쪽 한계선을 동경135도로 한다는데 잠정 합의했다.

이로써 우리측이 1965년12월 발효된 후 성실히 이행해 왔던 어업협정은
일본측이 요구한대로 개정을 눈앞에 두게 됐었다.

하지만 일본은 돌연 국제협상의 관례를 깨고 어업협정의 일방파기를 선언한
것이다.

그 이면에는 외교보다는 정치논리가 지배했다.

우선 어업협정의 일방파기는 일본 국내 수산업계의 요청과 이를 기반으로
한 자민당내 우파세력의 끈질긴 압력이 작용했다.

또 내각붕괴를 우려한 일본 여당의 불안감도 또다른 이유로 들 수 있다.

금융시스템 불안 문제 등으로 궁지에 몰린 하시모토 내각이 국면 전환용
으로 이같은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전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글로벌 시대에 외교 상식을 깬 이러한
일본의 작태는 지탄받아 마땅하다.

힘의 논리에 의해 강대국이 약소국을 지배했던 제국주의시대의 일본과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이게 일본인들이 입만 열면 떠드는 "세계평화" "아시아평화"이며 "세계에의
공헌"이란 말인가.

장유택 < 사회1부 >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