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당선자를 가장 괴롭히게 될 주제는 역시 경제문제다.

그를 당선시켜 준 것이 현정권의 경제실정이기도 했다.

당선자 스스로도 지난 19일 당선 기자회견의 주제를 "민주발전과 경제회생"
으로 설정해 경제문제가 갖는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음을 반증했다.

그러나 경제문제는 단순한 열정이나 이념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김 당선자는 최근 2,3년간 자민련과 결합하는 등 정책에서의 보수적인
성향을 보여 왔다.

그러나 당선 기자회견은 최근 2,3년간의 보수적 논조와는 상당한 거리를
갖는 것으로 보여 주목을 끌고 있다.

개혁을 강조하는 목소리는 동일하지만 "민주주의 없는 경제발전을 파행적
왜곡"이라고 한다거나 "경제의 목적은 국민의 행복에 있는 만큼 서민의
권익을 철저히 보호하겠다"는 등의 발언은 확실히 고전적인 "김대중 경제학"
으로 돌아서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김 당선자의 철학이 IMF와의 합의사항이 규정하고 있는 경제운용의 틀과
어떤 정도의 최소공약수를 갖는 것인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당선이후 불과 사흘만에 국민회의가 현정부의 구체적 결정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있는 점은 특히 현재의 경제문제가
여간 심각한 것이 아님을 반증하고 있다.

실제로 IMF가 요구하고 있는 이행조건들은 대량실업 감수, 고금리정책 등
국민회의의 기존 정책과는 상충된 부분이 적지 않다.

일치하는 부분이라면 대기업 경영의 투명성 확보정도인데 당선자가 이들
요구를 선별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면 우리경제 내부의 갈등은 오히려
증폭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여기에 당장 금융기관들의 구조조정은 당선자로서는 여간 곤란하지 않은
주제들이다.

IMF 구조조정이 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전제로 성립되어 있는 만큼 자를
것은 자르고 살릴 것은 살리는 결단을 당선자가 어느 시점에서 내려 주느냐
하는 것이 관심거리다.

이 문제는 결단의 시점에 따라 현정권과 당선자간에 갈등을 부를 소지도
없지 않아 보인다.

만일 당선자와 현정권이 권력의 인수인계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부딪칠
구체적인 선택의 시점을 둘러싸고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면 이는 국민경제에
심각한 혼선은 물론 정책의 공백을 초래할수 있다.

세월이 흐른뒤 다시 책임논쟁을 불러오게 될 것이 뻔하다.

당장 경제팀의 재구성 문제만 하더라도 과연 IMF와 매일같은 심야협상을
계속하는 이시점에서 말을 갈아타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을 부를수 있다.

김영삼 대통령과 김당선자는 지난 20일 양측이 12인으로 경제위원회를
발족시키기로 합의는 했다.

그러나 실제 운영과정이 얼마나 매끄러울 것이냐는 점은 의문이다.

임창열 경제부총리등 현정부로서는 민감한 문제와 관련해 당선자의 결심을
얻어 내려 하겠지만 금융기관 살생부를 작성하는 일 등 구체적인 문제에서
당선자가 얼마나 손에 피를 묻히려 들지는 미지수다.

만일 당선자가 이들 문제에 손을 씻으려 든다면 IMF 합의사항에 대한
당선자의 성실한 이행약속은 국제사회로부터 다시 의심받게 될 것이다.

김대통령이 IMF 구제금융 신청을 차일피일 미루다 화를 자초했다는 사실을
당선자는 깊이 헤아릴 필요가 있다.

당선자가 정치적 명분이나 체면만을 생각하기에는 우리경제의 문제들이
너무도 화급하다.

후보시절의 철학은 당분간 접어두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그래서 나오고 있다.

< 정규재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