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15대 대선에서 국민회의 김대중후보가 당선됨으로써 사실상 우리
헌정사 최초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가 이뤄지게 됐다.

그동안 세차례의 대권도전에서 실패한 호남출신의 김후보가 당선됨으로써
한국정치의 "고질"이 되다시피한 지역감정을 다소 누그러뜨렸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우리의 지역갈등구도를 치유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감사원장과 국무총리 집권당총재를 거쳐 이번 대선에서 최고통치권좌를
노렸던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사실상 정치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경선불복의 "멍에"를 안고 대권에 도전했던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는
첫번째의 정치적 좌절을 맛보게 됐다.

물론 이후보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선전"으로 재도약의 기회를 예비해
두었다고도 볼 수 있다.

이제 정치권의 관심은 국회의석이 78석인 국민회의의 김대중 대통령당선자
가 어떻게 정국안정을 꾀할 것인가로 쏠리고 있다.

"여소야대"하의 소수당으로서 국회과반의석을 갖고 있는 한나라당의 협조를
구하지 못할 경우 바로 12월 임시국회에서 시급히 처리해야할 금융개혁법안
이나 금융실명제 보완입법에 차질을 빚게 된다.

나아가 내년 2월 집권후에도 현재의 구도가 바뀌지 않는한 공동집권세력
이라고 할 수 있는 자민련의 의석을 합치더라도 국회과반의석에 29석이
모자라는 1백21석에 불과해 자칫하면 국정의 표류현상이 발생할 우려도
없지 않다.

때문에 김당선자는 빠른 시일안에 한나라당의 민주계인사들이나 국민신당측
과의 정치적 제휴를 모색하는 등 정계개편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지도부의 단속에도 불구하고 "대선패배에 따른
인책론"이 확산될 가능성과 함께 당권경쟁의 양태를 보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정치권에서는 당권 투쟁이 벌어질 경우 김윤환 선대위의장과 이한동대표를
축으로하는 구 민정계출신인사들과 조순총재를 구심점으로 이기택
선대위의장과 김덕룡의원 등이 가세하는 범민주계의 대결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다른 관심사는 김당선자가 추진할 내각제 개헌을 놓고 벌어질 제 정파간
의 합종연횡이다.

과반의석을 보유하고 있는 한나라당이 "단합"해 대통령제를 고수할 경우
내각제 개헌안은 국회에서조차 통과되기 어려워 정치권의 한차례 공방으로만
그칠 전망이다.

하지만 한나라당내에서 내각제를 선호하는 인사들이 국민회의와 자민련측에
동조할 경우 99년도에 접어들면서 내각제개헌 공방이 거세게 일 전망이다.

단기적으로는 김당선자의 새정부가 어떤 인사들로 언제 구성될 것인가가
관심거리다.

일단은 국민회의와 자민련간의 합의대로 김종필 명예총재가 "실세총리"에
발탁되고 내각도 국민회의와 자민련간 5대5 배분원칙에 따라 이뤄질
것이라는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하지만 막강한 대통령제하에서 집권에 성공한 김당선자가 과연 JP에게
실질적으로 조각권 일부를 위임하는 등의 역할분담을 할지는 속단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또 "지분"과 관련해서도 김당선자가 정국안정을 위해 여야를 초월한 거국
내각 구성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김 명예총재와 정치적 절충을 벌일
가능성도 있다.

정치권에서는 또 과거에 경험하지 못했던 여야정권교체를 위한 준비작업이
어떻게 진행될지에 대해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지난 92년말과는 달리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고 있는
"위기상황"에서 국정운영의 공백을 최소화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어 내년
2월 공식적인 정권출범에 앞서 조기에 비상거국내각이 구성될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선자가 대통령에 취임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시도가 법적으로
적절한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어 속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김당선자와 김대통령은 국정전반에 걸쳐 신속하고도 광범위한 협의를
거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정부각료와 국민회의 자민련간의 "당정협의"도 곧바로 가시화될 전망이다.

김 당선자의 집권후 진행될 개혁작업이 과거 김영삼 대통령의 취임초와
비교해 어떻게 달라질지 여부도 관심이다.

대체적으로는 "소수 의석"을 가진 김 당선자가 자신이 공언해온 정경유착
단절 등의 개혁을 "미래지향적"으로 단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대화합"을 추진해야 하는 입장인데다 스스로도 정치자금 등의 "멍에"
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때문에 김 당선자는 과거는 불문에 부치고 앞으로의 부정부패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 박정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