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자회담이 지난해 4월 한.미정상회담에서 제의된지 1년8개월만에 다음달
9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본회담을 개최하는 것으로 진전됐다.

지루한 탐색전끝에 시작되는 본회담은 기본적으로 남북관계를 비롯 한반도
를 중심으로한 동북아질서의 재편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성공할 경우
역사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하지만 본회담이 성사되기까지의 우여곡절은 앞으로의 협상과정에도 얼마나
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는지를 잘 말해 준다.

북한이 소극적인 자세에서 본회담 참석을 수락하게 된데는 한국과 미국
중국, 그리고 일본이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구사하며 끈질기게 접근전을
편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은 북한을 본회담으로 유도하기 위해 <>내달초로 예상되는 세계식량계획
(WFP)의 추가지원호소 참여 <>경제제재의 추가완화 <>미.북 양자접촉 채널
격상 등의 카드를 사용했다.

미국은 내년 2월말 출범하는 한국의 새 정부가 남북한간 직접대화를 추진
하며 4자회담을 용도폐기할 가능성을 우려, "물줄기"를 만든다는 차원에서
현정부 아래서 "회담개시"를 추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4자회담을 수교에 앞선 징검다리로 부각시키는 일본, 혈맹국 북한의 변화를
바라는 중국의 입김도 작용했다.

여기에 식량지원과 경협에서 한국이 실질적으로 북한의 최대파트너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식시킨 것도 주효했다는 평가다.

북한은 4자회담 제의당시부터 적대국인 미국의 첫 화해제의라는 점에 주목
했다.

북한으로서는 김정일 당총비서 취임이후 4자회담 참석으로 얻을수 있는
실리를 노리고 실용노선을 취할 필요가 있었을 것으로 관측된다.

여기에 내년에 다시 어려워질 식량사정을 감안해 본회담을 시작한뒤
본격적인 식량확보외교를 전개하자는 계산도 개입됐을 가능성이 높다.

4자대표는 이미 지난 9월 2차 예비회담에서 본회담의 진행방식 등에
대해서도 합의를 해놓은 상태이다.

남북한은 장관급이 참석하는 본회담을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긴장완화
및 신뢰구축을 위한 조치들에 대해 구체적인 논의를 해나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은 남북대화보다는 대미 대일관계 개선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본회담 초기단계부터 난관을 조성, 진통을 겪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북한은 동시에 본회담 참석을 대가로 대미 대일관계에 있어서 진전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4자회담의 진전에따라 미.북관계, 일.북관계 또한 진전이 불가피
하다는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한국의 국내 정치적 변수는 4자회담의 진로에 상당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다음달 18일 대선이후 들어설 차기 정권담당자와 북한의 김정일 사이의
"궁합"이 어떠하느냐에 따라 4자회담의 의미도 달라질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대북입장은 대통령이 누가 되든 크게 달라질게 없어 4자
회담의 근간이 크게 훼손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4자회담은 시간이 흐르면서 경수로사업에서처럼 남북관계가 중심축으로
부상할 수밖에 없다.

4자회담제의 자체도 남북한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미국과 일본은 이를
측면에서 돕는 것으로 설계돼 있다.

정부는 4자회담 진전에따라 대북경협의 폭과 규모를 확대하면서 북한에
더 많은 "당근"을 제공할 전망이다.

북한의 국제통화기금(IMF)및 아시아개발은행(ADB) 가입유도, 북한
나진.선봉지대에 대한 투자확대를 포함한 경협확대책이 거론되고 있다.

이와함께 정부는 남북한 월드컵분산개최를 위한 체육회담 남북적십자회담
등의 추진도 병행, 다각적인 남북직접대화채널을 구축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의 변화를 진원지로한 남북관계및 동북아질서의 재편이라는 큰
흐름이 설정된다고 해도 잠수함침투사건과 같은 돌발변수에 의해 기복이
형성될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전망이다.

< 이건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