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전 북한노동당비서는 20일 언론기고문을 통해 "우리가 바라는 것은
김정일이 봉건적인 개인독재체제를 버리고 개혁 개방의 길로 나오는 것이며
무모하고 범죄적인 무력통일노선을 버리고 남북대화와 교류의 길로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황씨의 기고문을 요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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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북한 통치자들은 김정일의 공식 권력승계를 놓고 마치 새로운 태양이
솟아오른 우주의 대사변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떠들고 있다.

후계자의 권력승계에 대하여 말한다면 그것은 오래전에 시작되었으며
적어도 1974년 2월 노동당 조직비서로서 제2인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자기 삼촌(김영주)을 내쫓고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됨으로써 사실상 끝났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북한 통치자가 3년3개월이나 공식승계를 미루는 남다른 변덕을
부리다가 오늘은 또 공인된 정상적 선거절차도 밟지 않고 공식승계를 슬쩍
해버린 의도는 어디에 있겠는가?

첫째로 김정일에게 가장 아픈 약점은 현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세습승계를
한다는 점이다.

이 문제를 무마시켜 보려고 매우 고심해 왔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김정일은 공식승계를 미루면서 부친의 방조없이도 자체의 힘으로 능히
영도자의 지위를 지키고 나라를 통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였다.

둘째로 김정일은 총비서라든가 국가주석같은 공식적인 법적 지위보다는
절대적으로 신격화된 수령의 초법적인 지위를 계승하는 것을 더 중요시
하였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수령의 지위를 계승하는데서 첫째가는 조건은 수령에 대한 충실성이기
때문에 김정일은 수령에 대한 자기의 충성과 효성을 과시하여 수령의 지위
승계를 위한 도덕적 권위를 높이는데 1차적 의의를 부여하였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기대하여야 하겠는가?

물론 우리가 바라는 것은 김정일이 봉건적인 개인독재체제를 버리고 개혁
개방의 길로 나오는 것이며 무모하고 범죄적인 무력통일노선을 버리고 남북
대화와 교류의 길로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 정권의 본질이 달라지지 않은 것만큼 큰 정책적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우리는 그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그의 말이 아니라 실천에서 구체적인
변화가 있는가 없는가를 주의깊게 지켜보는 원칙을 견지하여야 할 것이다.

북한 통치자들의 사상은 인간중심의 사회주의 사상과 인연이 없을뿐
아니라 스탈린주의로부터도 멀리 후퇴.변질하였다.

그들의 사상은 무자비한 계급투쟁을 신봉하는 계급주의이고 쇄국주의를
주장하는 민족배타주의이며 철저한 개인숭배에 기초한 전제주의적 개인독재
사상이며 폭력을 신성화하는 군국주의 사상이다.

"사회주의와 시장경제는 양립할 수 없다"는 희떠운 주장과 계급투쟁과
폭력혁명의 과격한 수식사와 역겨운 자화자찬으로 가득찬 이른바 "고전적
노작"들을 대담하게 버리고 보다 겸손한 자세로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한
길, 조국의 평화적 통일의 길로 일대 방향전환을 하여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