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국당이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를 뇌물수수 및 조세포탈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데 이어 17일 검찰에 대해 수사착수 압박을 가하고 있어 비자금 정국이
어느 쪽으로 가닥이 잡혀 갈지 정치권의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검찰측이 단순 고발사건에 준하는 절차에는 들어갈 것으로는 보이나 대선
전에 고발인 조사를 시작하는 등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할지 여부는 불투명
하다는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특히 신한국당 이회창 총재가 다소 포괄적인 언급이긴 하나 김영삼 대통령의
92년 대선자금에 대해서도 필요한 경우 수사해야 한다고 치고 나와 여권
내부에서도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고 이는 검찰의 향후 행보를 점치기가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DJ 비자금 폭로라는 "사생결단"의 승부수에도 불구, 오히려 지지율 하락
이라는 급부만 되돌려 받은 이총재로서는 그야말로 마지막 카드를 뽑은
셈이다.

정치권에서는 이총재의 여권 대선자금에 대한 언급이 YS와의 사전 교감하
에서 나온 것이라기 보다는 이총재측의 독자적인 결심에서 나왔을 것이라는게
다수설이다.

이총재로서는 어떻게 해서든 DJ대세론을 차단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김대통령까지를 포함한 3김과의 차별화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고 보는
것이다.

김대통령의 "미적지근"한 협력을 잃더라도 반전의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막다른 상황에서의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얘기다.

이총재는 내주초 기자회견을 갖고 김대중 총재 비자금 의혹사건에 대한
검찰수사를 촉구하고, 필요할 경우 김영삼대통령의 대선자금 및 자신의 경선
자금 의혹에 대한 수사도 수용할수 있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힐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총재는 또 김총재 비자금 의혹 제기가 지지율의 만회를 위한 궁여지책으로
나왔다는 일부 여론을 의식, "깨끗한 정치풍토를 조성하기 위한 정치개혁
차원에서 문제 삼은 것"이라고 해명하는 한편 강력한 부정부패 척결방안을
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이총재측의 강공책에 대해 당내 중진들 상당수는 그 "효과"에 대해
부정적인 관측을 하고 있다.

강공책 일변으로 정치.경제적 위기감을 확산시키게 되고 이는 전통적인
여권지지층 마저도 "적"으로 돌릴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들은 한발 더 나아가 현재의 이총재의 지지율로는 정권창출이 어렵다고
보고 대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쪽으로 공감대를 형성해 가고 있어 주목된다.

만약 중진들조차 당내 비주류 일각에서 이달말께 제기할 것으로 예상되는
후보교체론에 합세하는 쪽으로 당내 상황이 진전될때 신한국당은 걷잡을수
없는 내홍에 휩쓸릴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회의는 일단 맞고발 등을 자제하면서 검찰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점진적인 대응책을 마련한다는 전략이다.

청와대나 검찰의 분위기로 봐 본격적인 비자금수사에 착수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면서도 만에 하나 검찰이 전면수사에 착수할 경우 김대통령 대선
자금과 이총재 경선자금 의혹을 제기한뒤 이를 검찰에 맞고소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한 당직자는 이날 "92년 대선자금과 이총재 경선자금에 대한 증거를 상당
수준 확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동영 대변인은 "이총재가 법앞에 만인이 평등하다고 한 것은 나만 빼고
모두가 평등하다는 지극히 이기적인 발상"이라며 "이총재의 경선자금도
검찰수사 대상에 포함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민련 김종필 총재는 이날 "대선자금의혹에 대한 해명이 없이 김총재의
비자금문제를 푸는 것은 불가능하며 이번 의혹해소는 법집행의 형평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인제 전 경기지사의 국민신당도 이총재 경선자금 의혹은 반드시 규명되어
야 하나 대선자금 문제를 사법의 심판대에 올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박정호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