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과 "약속위반"은 어떻게 다른가.

국민회의 김대중총재는 지난 8일 가진 한국논단주최 사상검증토론회와
관훈토론회에서 이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거짓말은 처음부터 속이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고 약속위반은 그런 의도가
없는 것이다"

이처럼 개념차이를 분명히 한 김총재는 "일생에 한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김총재는 정계은퇴선언을 번복한 것도 처음에는 지키려했으나 상황변화로
그렇게 하지 못한 "약속위반"이었으며 이에 대해서는 이미 사과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김총재의 말은 패널리스트의 지적처럼 그럴듯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거짓말이건 약속이건 듣는이의 입장에서는 별차이가 없다.

어떤 사람의 말을 진실한 것으로 믿는 사람에게 그런 차이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더욱이 거짓말과 약속위반은 모두 사후적으로 밝혀지는 것이다.

검증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말하는 사람만이 거짓말인지 약속인지를 알
수 있을뿐이다.

김총재는 노태우 비자금사건때 처음에는 노전대통령으로부터 돈을 받지
않았다고 했다가 나중에 20억원을 받았다고 했다.

처음에 돈을 받지 않았다고 했을 때는 속이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김총재는 그러나 이것을 거짓말로 보지 않았다.

거짓말을 했다가 나중에 정정하면 거짓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김총재의
"거짓말"에 대한 해석이기 때문일까.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 국민 입장에서는 김총재의 이같은 개념정의와 이에
따른 자기변론이 혼란스럽기만 하다.

김총재 말대로라면 국민들은 김총재의 대선공약이 언젠가 지켜지지 않을
수 있는 약속인지,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국민을 속이는 거짓말인지부터
분간하는 수고를 할 것같다.

이번 대선에서 많은 국민들은 거짓말과 약속위반을 명쾌히 구분하는
김총재의 지적능력을 검증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김총재가 지금 하고 있는 말이 거짓말도, 지키지 않을 약속도 아니라는
점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김총재보다 더 많이 약속을 위반했고, 거짓말도 많이 한 사람도
요구하고 누릴 수 있는 당연한 권리이다.

거짓말과 약속위반의 피해자는 바로 국민들이기때문이다.

허귀식 < 정치부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