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련 박준규 최고고문이 지난 10일 "9월말까지 단일화가 안되면 당을 떠나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를 돕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하면서 야권후보
단일화협상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국민회의는 11일 박고문의 발언이 양당협상에 난기류를 형성할 것을 우려,
공개적인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물론 속마음은 싫지 않다는 것이다.

국민회의로서는 보수대연합론까지 내세우며 여권을 노크하는 김종필 총재의
최근 행보와 관련, 속앓이만 해온 처지에서 박고문의 지지발언이야말로
더이상 바랄 것이 없는 최상의 지원사격이기 때문이다.

국민회의는 박고문의 행보가 야권의 단일화협상을 압박하고 TK(대구.경북)
세력의 독자적인 목소리를 높여 차기정부에서 TK지분을 확실히 보장받겠다는
의도하에 이뤄지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국민회의는 구여권에 뿌리를 두고 있는 박고문이 DJ 지지를 밝힌뒤 이날
박태준 의원과 함께 전두환 전대통령을 면회하는 등 TK 결집을 시도하는 듯한
행보를 하고 있는데 주목하고 있다.

자민련은 표면적으로 박고문이 그동안 당무에 불참하는 등 사실상
독자행동을 해왔기 때문에 이번 발언을 대수롭게 볼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김총재측은 내부적으로 박철언 부총재 등 일부 TK의원들의
독자세력화 움직임이 가속화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김총재측은 박고문의 발언이 김대중 총재가 지난 10일 중국에서 요양
중인 신한국당 최형우 고문에게 박상규 부총재를 보내 위로의 뜻을 담은
친서를 전하는 등 영남지역 지지세를 확충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는 시기에
튀어나왔다는 점에서 국민회의의 "작용"이 있었다는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자민련이 이날 김창영 부대변인을 통해 김대중 총재의 전날 김현철씨 사면
언급과 관련, "재판이 진행중인 상황에서 사면을 시사하는 것은 사법부에
대한 모독이자 법집행의 형평성을 훼손하는 발상"이라고 공식 비판을 제기한
것도 박고문을 흡인하는 국민회의측에 불편한 심기를 전달한 것이라는 분석
이다.

결국 박고문의 이번 독자행동은 효과면에서 DJ로의 단일화를 촉진할수도
있지만 자민련 주류측의 감정을 자극, 단일화협상을 더욱 어렵게 할수도 있는
이중성을 띠고 있는 셈이다.

이와관련해 국민회의가 "보수대연합론"으로 국민회의를 압박하는 자민련측에
대해 "TK와의 연대론"으로 맞서면서 협상결렬에 대비, "영호남 공동집권"
구상을 준비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물론 이번 일은 현 상황에서 박고문과 행동을 통일하겠다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에 TK출신 자민련의원들의 추가적인 이탈행동이 표면화하지 않는한
일과성 파문으로 끝날 수도 있다.

하지만 박고문의 발언은 그동안 몸을 낮추고 있던 TK의원들에 대해 "어른"의
입장에서 분명한 자기목소리를 낼 것을 촉구한 것으로 해석할수도 있는 만큼
앞으로 이들의 움직임은 추석이후 분명한 목표를 향해 더욱 활발해지고 이에
따른 정치권 파장도 작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 허귀식.김태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