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대 대선을 불과 1백일 남짓 앞두고 터져나온 자민련 김종필 총재의
"YS와 내각제 개헌 추진 용의" 발언은 대선정국 구도를 송두리째 흔들어놓을
인화력을 가졌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김총재는 5일 "아직 김영삼 대통령 임기전에 내각제 개헌을 할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며 "이를 위해 국민들이 필요하다고 합의하면 대선을
연기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김총재는 또 "김대통령이 내각제를 결심하고 선두에 나서 국민투표에
부치면 협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내각제를 선호하는 정파와는 누구든 손잡을수 있다는게 김총재의 지론인
만큼 이날 발언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수 있다.

그러나 현재 정치권의 상황 등을 감안해보면 김총재의 발언은 예사롭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그도 그럴것이 불과 바로 전날 야당공조로 안양만안 보선에서의 승리를
일궈내면서 후보단일화에 중요한 전기를 마련한 터라 김총재의 이날 언급은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와의 "밀월관계 청산"을 각오한 것으로 풀이되기
때문이다.

특히 "국민대통합"을 화두로 여타 정파와의 연대를 추진, 수세국면의
일대전환을 모색하고 있는 신한국당의 움직임과 맞물려 사전교감설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김총재 단독출마로는 승리를 자신할수 없는 여건을 감안해볼때
자신의 보수대연합 구상을 여권에 공식 타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신한국당 이회창 대표의 지지율 급락으로 여권의 정권 재창출 목표에
적신호가 켜진만큼 이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려는 전략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김총재의 이같은 구상은 신한국당 이한동 고문을 매개로 여권과의
연결고리를 찾으려는 조짐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이고문은 최근 일본 도쿄에서 김윤환 고문 무소속 박태준 의원과 연쇄회동,
내각제 개헌 등 보수대연합 방안을 집중 논의한 것으로 알려져 김총재의
구상과 연관이 있지 않으냐는 관측이 대두되고 있다.

여권의 한 고위관계자가 이날 "국민대통합의 구현에 큰 관심을 두고 있는
이회창 대표가 이미 당내 중진인사들을 통해 자민련 등의 의사를 타진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그러나 조홍래 청와대 정무수석과 강삼재 사무총장 등 여권의 핵심인사들은
"내각제 개헌 반대입장은 불변"이라며 겉으로는 일단 부정적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이들은 김총재의 제안을 받아들일 경우 사실상 이회창 대표의 "낙마"를
인정하는 셈이어서 김총재의 발언 배경과 진의 파악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그렇지만 여권이 이회창 후보로는 정권 창출이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를 전격적으로 검토할 경우에는 대선구도 변화는 물론 정계 개편을 촉발
하는 등 정치권에 일대 지각변동이 일 것이라는게 중론이다.

이와관련, 보수대연합이든 내각제 개헌 움직임이든 그 중심에 과거 민정당
인사들이 서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한동 김윤환 고문 박태준 의원 등 민정계 3인방과 자민련 김종필 총재
등이 내각제 개헌에 의견일치를 봤다면 이는 지난 92년 3당 합당 당시로
회귀하는 것으로 볼수 있다.

임기중 개헌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김대통령에게 3당 합당때의 "내각제
약속"을 지키라는 압력일수 있다는 얘기다.

현 상황이 "대안부재"였던 당시와 흡사해 민정계가 사실상 옹립한 이회창
대표의 "상품성"이 퇴색돼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는 김대통령이 내각제 카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일부 분석도 나오고 있다.

게다가 내각제 추진을 위한 "토양"도 그 어느 때보다도 무르익었다는 지적
이다.

상당수 국민들이 여야가 이번 대선을 사생결단식으로 치르려하는데 우려하고
있으며 특히 재계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대선이 얼마남지 않은 시점에서 내각제 추진은 어려울 것이라는
일반적 관측과는 달리 대선이 가까워 올수록 논의에 가속이 붙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렇더라도 내각제 개헌을 골간으로 한 인위적 정계개편이 성사되기까지에는
걸림돌이 적지 않다.

국회동의는 차치하고라도 국민투표에 부쳐야 하는 문제가 있다.

이 경우 찬반 양 진영으로 나뉘어지면서 필요이상의 국력을 소모할 공산이
크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심각한 경제난에 정치권마저 정략적 차원에서 개헌론과 정계 개편을
논의하는 것은 국민적 저항에 부딪칠 가능성이 높다.

또 설혹 국민동의 절차를 거치더라도 정치권 내부의 권력배분문제도 해결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김삼규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