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국당 이회창 대표가 고심 끝에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추석 전 사면"을 건의하겠다고 지난 1일 전격 발표했다.

급락한 지지도를 만회하기 위한 비장의 카드중 하나를 뽑았던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그러나 하루 뒤인 2일 이를 수용할수 없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이대표로서는 엄청난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이같은 일은 이제까지의 임기말 현직 대통령과 집권당 대통령후보의 관계를
감안하면 지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대선을 앞두고 정권창출이라는 명제 때문에 비록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더라도 후보의 각종 건의나 정치적 이니셔티브를 최대한
수용해 줬다.

김대통령이 이대표로 정권을 재창출해야 한다는데 대해 뭔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이대표에게 타격을 주느냐 여부를 떠나 퇴임후에
라도 한가닥 내세울수 있는 "역사 바로세우기"에 대해서 만큼은 이대표와는
다른 견해임을 원론적으로 밝힌 정도였을까.

진의는 불확실하지만 사전협의조차 없었던 이대표의 "월권행위"에 대해
김대통령이 상당히 불쾌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권내에서의 지도력에 치명타를 입을지도 모른다는 우려속에 이대표는
이날 저녁 늦게 긴급 면담을 요청, 김대통령과 청와대에서 심야회동을
가졌다.

김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재판은 역사 바로세우기의
의미를 갖고 있으며 지금은 그 시기가 아니라고 본다"고 강조, 우회적으로
이대표의 역사인식에 문제점이 있음을 지적했다.

김대통령은 다만 "국민대화합 차원에서 사면을 건의한 취지는 충분히
이해한다"는 선에서 당대표에 대한 "예우"조치를 취했다.

이날 회동을 정치적 "담판"으로 규정한다면 "결렬"로 볼 수밖에 없고
앞으로 파장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번 사태로 신한국당 안팎에서는 "9월중 이대표 휴거설" 등 온갖 설이
더욱 증폭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후보로는 정권창출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당 일각에서 일고 있는 "후보
교체"의 총대를 김대통령이 스스로 멜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추석 연휴가 끝난 뒤에도 이대표의 지지율이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을때
당 총재로서 이대표에게 직접 후보사퇴를 종용할 것이라든가 일부 중진들을
통해 그 같은 압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등의 추측이 일고 있다.

또 이대표가 후보를 사퇴하지 않을 경우 반 이대표 진영의 이인제 경기지사
등이 중심이 돼 사실상의 "여권 교체후보"를 물색하도록 하고 이를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는 설도 있다.

정치권에서는 그러나 김대통령이 "후보교체" 입장을 최종적으로 굳힌 단계는
아직 아니고 다만 뭔가 심각히 고민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보고 있다.

역대 집권당 사상 첫 자유경선을 통해 선출된 이후보를 교체할 명분이
적은데다 "대안"에 대해서도 확신이 서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대통령이 "당내 상황"과 관련해 모종의 결단을 하게 될 경우 그 시기는
추석연휴 전후가 될 전망이다.

그때쯤이면 당내에서"후보교체론"이 본격적으로 제기되는 것은 물론 여권의
"대안후보"를 노리는 이인제 지사가 지사직을 사퇴하는 등 여권이 한차례
격랑에 휩싸일 시점이다.

< 박정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