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PC통신 토론방에 "이회창 살생부가 나돌고 있다"는 해괴한 글이
떠올랐다.

이후보가 정권을 잡으면 당내 경선 및 대선 과정에서 밉보인 인사를
"숙청"할 것이라는 말과 함께 그 명단이 나열돼 있다.

한번쯤 검색해 보고 싶은 충동을 유발하기에 충분한 글이다.

그러나 이는 허무맹랑한 것임이 드러났다.

이 글은 실명 정치인의 말을 인용하는 등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있으나
취재 결과 사실 무근이었다.

특정 후보를 겨냥, 악성 루머를 퍼트리려는 세력의 마타도어인 셈이다.

PC통신에는 이밖에도 정치계절을 맞아 특정 후보에 대한 원색적인 비방,
지역 감정을 자극하는 글이 여럿 올라와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PC통신업계 관계자들은 이같은 현상에 대해 "PC통신에 정치권의 "작전"
세력이 개입할 여지가 많고 실제로 그런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한다.

익명이 보장된다는 PC통신의 특성을 악용, 치졸한 선거전을 펼치고 있다는
얘기이다.

문명의 이기가 다 그렇듯 PC통신도 잘만 활용한다면 건전한 선거문화
정착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PC통신을 통한 후보자간 정책대결, 후보자 초청 토론, 여론 조사 등
찾아보면 얼마든지 많다.

PC통신의 주 고객인 젊은이들의 정치참여를 유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같은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PC통신의 악성 루머를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치부할 수 없다는데
있다.

PC통신은 이미 영향력있는 정보유통 수단으로 자리잡아 이를 통한 악성
루머는 파괴력을 가질 수도 있다.

정치권과 행정당국, 업계가 다각적인 대응책을 모색해야할 때이다.

한우덕 <과학정보통신부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