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21일 이회창후보가 차기 대통령후보로 선출되면서
"갈등과 협력"을 되풀이했던 김영삼대통령과 이후보의 향후 관계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오는 12월 18일 대통령선거때까지 두 사람이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
하느냐, 아니면 갈등이 표출되는 반목의 길을 걷느냐에 따라 정권재창출의
성패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중심제에서 그것도 단임제하에서는 차기 대통령후보가 결정되면
현직 대통령으로부터 차기 대통령후보에게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것은
불가피한 현상이라 할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두 사람의 관계는 <>정치적 스타일 <>정치적 영향력과 당내
위상 <>성격 <>여권 역학구조 <>두 참모진영의 정국운영및 대선구상
<>야권과의 관계에 따라 그 색깔과 구도가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김대통령은 정치판에서만 40여년을 보내온 "골수 정치인"으로 정치 초년생
인 이후보에게는 정치계 대선배라고 할수 있다.

나이도 김대통령은 27년생이며 이후보는 35년생으로 연령에서도 적잖은
차이가 있다.

동양적인 인간관계에서 존중되는 이런 점 때문에 그동안 두사람 사이에서
큰 잡음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김대통령과 이후보가 현재의 위치에까지 이른 성장과정은 다르면서도
두사람 모두 주견이 뚜렷하고 결단력이 남달라 상호 보완적이라기 보다는
상충적이라는게 중평이다.

따라서 두 사람이 김대통령에서 이후보로 옮아갈 여권내 힘의 중심이동을
원만하게 조절, 대선까지의 과제들을 조화롭게 해결해나가지 못하고
불협화음을 빚을 경우 두사람의 관계는 물론 정국의 기류가 달라질수가
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는 김대통령이 자신의 남은 임기동안 "힘의 이동" 현상을 현실로
수용하면서 얼마나 적극적으로 "이회창시대"의 개막을 수용하느냐가 상당히
중요한 변수라는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지난 93년 1월.당시 김대통령이 문민정부 출범직전 대통령당선자로서
대법관이었던 이후보를 감사원장으로 발탁하면서 두사람은 첫 인연을 맺었다.

김대통령은 이후 이후보를 감사원장과 국무총리, 신한국당 선거대책위의장,
당대표 등 당정의 핵심요직에 기용했다.

김대통령의 이후보에 대한 신뢰를 단적으로 드러내 주고 있다.

그러나 이후보가 감사원장 재직시 문민정부와 빚은 알력, 김대통령의
총리직 해임, 경선과정의 알력등에서 두사람의 강경한 성격이 정면으로
대립을 이뤘다.

특히 94년 4월 22일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 운영문제를 놓고 김대통령이
헌법상의 총리권한을 내세우며 자신에 맞선 이후보를 총리직에서 전격
해임한 것은 "갈등"의 대표적 사례에 속한다.

그러나 김대통령이 자신의 다짐대로 이번 경선과정에 일절 "개입"하지
않아 대세몰이를 해온 이후보에게 승리를 안겨줌으로써 결과적으로 협력
관계는 "유종의 미"를 거둔 것으로 볼수 있다.

이후보는 "7.21" 전당대회에서 승리했지만 경선과정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당내 모든 계파를 끌어안고 갈수밖에 없으며 이 과정에서
김대통령의 협조가 필요하다.

그러나 총재직 이양시기를 놓고 정국상황에 따라 두 사람이 알력을 빚을
소지가 없지 않다.

김대통령은 가급적 그 시기를 늦추려 할 것이고 이후보는 이를 앞당기려할
수 있다.

게다가 이후보가 대통령선거 전략을 염두에 두고 김대통령과의 관계정립을
어떻게 대외적으로 내보이느냐를 현재로서는 속단하기 어렵다.

< 최완수.손상우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