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된 남북한 정세에 맞게 남출신들과 사업을 하라"

"초혁명적인 언사를 일삼는 사람들은 배를 태우지 마라"

"어머니(김정일의 모친) 탄생 80돌때 인민들에게 제공할 명절상품을 마련
하는 투쟁을 전개하라"

북한의 김정일과 조선노동당이 지난 2월26일부터 5월28일까지 92일간 당
간부들에게 내린 지침의 일부이다.

6.25 전쟁 발발 47주년을 앞두고 본지가 단독입수한 이 문건은 최근 북한을
방문한 제3국 국적 A씨가 당간부로부터 입수한 것이다.

이 문건에 따르면 김정일은 지난 2월26일 조선노동당 조직부와 선전선동부
등에 내린 친필서신에서 "어머니 탄생 80돌때 인민들에게 줄 명절상품마련
투쟁을 전개하라"고 지시했다.

김정일은 이 서신에서 각 세대에 술 2병과 고기 1kg 먹는 기름 1병 솜옷
양복천 겨울과 봄 내의를 기본으로 하고 섬유제품 2점 이상, 자전거와
재봉기 선풍기 세면기 등 일용품을 줄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김정일은 지난 4월15일 김일성의 생일때 북한주민들에게 제공한
''명절상품''의 질이 형편없었다면서 "저급상품과의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명령했다.

또한 김정일은 체제유지를 위해 "비사회적 현상들을 철저히 극복하라"
(4월2일)고 지시했다.

당간부들은 6월말까지 이같은 취지를 이해해 북한주민들을 설득시키고
7~12월중에 "투쟁대상을 갈아뭉개버리고 개인 상공업과 모리배들을 엄격히
처리한다. 젊은 학생과 청년들의 장사질을 단속하고 개인식당과 밀수 밀매
밀주 등을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일은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먹는 문제를 풀 것'' ''경제관리
규율과 질서를 세울 것''과 ''농민시장의 관리운영대책을 마련하라''"고
덧붙였다.

김정일은 이와함께 5월9일과 14일 두번에 걸쳐 방탕자문제와 관련, "조선
노동당 선전 선동부만이 책임질 일이 아니다. 사회안전기관들이 다 책임
있는 문제인 만큼 계응태 비서가 관계부문의 일꾼들을 모아 놓고 대책을
협의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김정일의 친필서신과는 별도로 조선노동당은 지난 5월28일 당간부들에게
내린 서신에서 "중국에서 피를 비싸게 사간다고 해 전국 각지의 불순한
자들이 신의주로 몰려들고 있다. 하루평균 1백30여명이 1백g을 북한돈
1만원(50달러 상당)을 팔고 있다"고 지적, 이에 대한 대책을 수립할 것을
지시했다.

조선노동당은 이와함께 "조성된 정세에 맞게 남한출신들과 사업을 하라"
(5월7일)고 했고 "일부 개성주민들이 골동품을 찾는다면서 옛무덤을
파헤치는 행위를 단속하라"(4월2일)고 밝혔다.

북한주민들이 선박을 이용해 남한으로 탈출하는 것과 관련, 조선노동당은
5월27일 "승선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사회주의 신념이 확고한가를 확인하라"
며 "중국인 등 외국인과 불필요한 접촉을 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혁명적인
언사를 일삼는 자, 남한출신자, 미국과 캐나다 등 해외연고자, 직장을
자주 옮긴 자, 울타리를 높이 쌓고 외부와의 접촉이 없는 자 등은 승선
시키지 말 것"을 지시했다.

김정일도 북한주민이탈의 심각성을 인식, 지난 5월21일 "바다출입과 선박
단속질서를 엄격히 지키라. 3/4분기안으로 배들을 전반적으로 파악해 등록
되지 않은 배는 몰수하고 불순세력이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하라. 이를
수행하지 못한 당간부는 문책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문건과 관련, 베이징 주재 한 외교소식통은 "김정일의 친필서신 일부가
알려진 적은 있으나 조선노동당과 김정일이 3개월간에 걸쳐 당간부들에게
내린 지시와 친필서신이 일시에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극도의
식량난을 극복하는 노력보다는 김정일 주변과 체제유지에 급급하고 있는
것을 명확히 확인시켜 주고 있다"고 말했다.

< 베이징 = 김영근 특파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