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전북한노동당비서가 정보당국으로부터 조사를 받기 시작하자
정치권이 바짝 긴장하며 그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신한국당의원들로 구성된 "나라의 안보를 걱정하는 의원모임"이 21일오전
국회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황씨망명에 따른 대북정책방향과 "황장엽리스트"
처리문제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 것이 그 대표적 사례다.

이 모임은 황씨의 "입"에 따라 한보정국으로 혼돈에 빠져있는 정치권이
수습불능 상황에까지 몰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관심을
끌었다.

이 모임의 간사인 김용갑의원은 "정치권이 황씨 망명을 환영하는데 인색
해서는 안된다는게 대체적 견해였다"고 전하고 "그러나 정부당국은 황씨가
조사과정에서 얘기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신중히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김의원은 특히 황장엽리스트 문제와 관련, "갖가지 추측이 나오고 있는
현상황에서 황씨의 언급이 비약될 경우 혼란만 가중될 뿐"이라며 "만약
리스트나 그와 유사한 사실이 있으면 어느 시기에 가서 발표하되 지금 정치
쟁점화해서는 안된다는게 우리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최병렬의원은 "황장엽리스트가 어떤 형태로든 회자될 경우 정치판도를
뒤집을 핵폭탄이 될 수도 있다"면서 "검찰과 안기부 수사의 신뢰성이 문제
되고 있는 상황에서 리스트가 나온다 하더라도 그 자체로 판단해서는 안되며
수사단서 차원에서만 활용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의원과 최의원은 "현재까지 정황으로 볼 때 황장엽리스트가 실재하는 것
같지는 않다"면서 "그러나 청와대수석실의 회의내용이 김정일의 책상까지
메모로 전달되는 사례도 있다는 사실은 심각한 문제"라면서 여권내 친북
세력에 의혹의 눈길을 보냈다.

최의원은 이에대해 "김광일 전대통령비서실장에게 확인한 결과 메모내용과
당시 청와대 회의내용이 유사하다는 것이 밝혀졌다"면서 "대화내용이 비밀
사안은 아니었다고는 하지만 심각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황씨의 입국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야권은 이날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국민회의는 간부회의에서 황장엽리스트의 존재여부와 대책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상천 총무는 이 자리에서 "안기부가 지난 19일 시내모처에서 가진
설명회에서 "황장엽리스트는 없다"고 밝혔다"고 보고했다.

박총무는 "당국자는 황장엽리스트에 대해선 물어볼 시간도 없었으며 또
황씨가 자신의 뜻과 맞지 않는 질문에는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어 앞으로도
리스트에 대해 물어볼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 김삼규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