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전대통령비자금을 자기명의로 실명전환해준 정태수 한보그룹총회장
과 이경훈 전(주)대우대표의 업무방해혐의에 대해 대법원이 17일 무죄판결을
확정했다.

지하자금양성화를 목적으로 자금출처조사를 대폭 면제하는 방향으로 금융
실명제를 보완키로 한데 이어 이번 판결까지 나와 금융실명제는 당초의 취지
를 살리기 어렵게 됐다.

금융실명제를 도입할 당초의 취지는 실지명의에 의해서만 금융거래를
하도록 의무화함으로써 음성불로소득및 불건전자금거래의 소지를 제거하는
것과 이자소득 배당소득 등 금융소득의 실질귀속자를 밝힘으로써 조세부담의
형평성을 제고한다는 것.

그러나 대법원의 이번 확정판결은 구린돈을 감추고 싶은 사람이나 종합
과세를 피하려는 거액자금주가 합의차명을 통해 실명의 부담에서 벗어날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실제 자금주와 이름을 빌려준 사람이 합의만 한다면 남의 이름으로 아무리
큰 금액을 제도금융권을 통해 거래해도 문제가 되지 않게 됐다는 점이다.

또 금융기관직원들이 수신고를 높이기 위해 거액자금주들의 합의차명을
적극적으로 알선해 주고 있는 관행도 사실상 묵인하는 결과가 됐다.

당사자들이 사적으로 차명거래를 합의했다고 하면 그만인 것이다.

탈세자금 범죄자금 불법정치자금의 소유주가 거리낌없이 남의 명의로
금융거래를 하게됨 따라 조세부담의 형평성제고나 부정부패및 사회부조리
소지제거라는 금융실명제의 당초 취지는 전혀 달성할수 없게 돼버렸다.

재경원은 "현행 금융실명제는 금융기관종사자에게 외형상 나타난 금융
거래자의 주민등록증이나 사업자등록증에 의하여 실명여부를 확인토록 할뿐
거래자가 자금의 실질소유자인지 여부를 확인하도록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라며 진작부터 당초 목표를 포기한 상태다.

다만 자금세탁방지법이 새로 마련되면 금융실명제의 목적이 일부 달성될수
있다는게 정부의 주장이다.

그러나 당초 금융실명제보완과 함께 추진하기로 했던 자금세탁방지법은
법무부의 소극적인 태도와 여당의 반대로 법제정이 불투명한 상태다.

결국 현정부 최대의 치적이라던 금융실명제는 현실론에 밀려 유명무실한
제도가 될 공산이 크다.

<김성택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