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언제부턴가 "경제"를 외치고 있다.

여권 대권주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야권의 대권주자들까지 소위 경제에
중심을 둔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 괴롭히기를 계속하고 있고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돈 적게
쓰는 선거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는 정치권이 과연 경제살리기에
앞장설만한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일례로 삼원정밀금속은 지난 9일 야당의 김모의원이 국회한보특위청문회
에서 이 회사 대표가 신한국당 이회창 대표의 인척이라며 자금조달배경에
의문을 제기하는 바람에 최근 운영자금조달에 애로를 겪고 있다고 한다.

김의원의 주장에 여당측은 대표 흠집내기라며 공세를 취하기도 했지만
진짜 피해자는 여당도 야당도 아닌 삼원정밀금속이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보상을 받을 수 있느냐"는게 이 회사측의 하소연이다.

야당의 또다른 김모의원은 TV로 생중계되는 특위에서 구체적으로 회사
이름을 거명하며 부도위기에 처해있다고 주장했다.

기업의 생명줄을 끊을 수 있는 무책임한 발언을 서슴지 않은 것이다.

대표와 관련된 발언에 대해서는 흥분할 줄 아는 여당 의원들도 기업과
종업원을 사지로 모는 이런 "살인적" 발언에는 무감각했다.

사실 기업들이 그동안 정치인들에게 돈을 갖다바친 것은 특혜를 받기 위해,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정치인들의 이런 상식밖, 수준이하
발언이 무서웠는지도 모른다.

더욱이 대출로 겨우 연명할 정도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한보로부터
수십명의 정치인들이 거리낌없이 돈을 받아 썼고 그게 밝혀져도 "나는
빚더미에 오른 기업을 괴롭힌 못된 사람"이라고 회개하는 이가 없었다는
것은 우리 정치인들이 기업과 경제를 걱정할 최소한의 양식과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를 근본적으로 의심케 한다.

정치인들이 경제를 살리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그 무엇을 외치기보다
자신들이 스스로 만든 사이비정치판을 뜯어고치는 일인 듯하다.

허귀식 < 정치부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