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학원의원(신한국당)

-한보가 부실한데도 계속 대출을 해준 것은 뇌물을 받았기 때문인가 아니면
외압을 받았기 때문인가.

"외압은 없었다.

공장을 완공, 정상 가동시키고 완공후 담보를 취득하려고 했다.

대출을 중단하면 은행이 큰 손실을 입고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될 것으로
판단했다"


-1월7일 조선호텔에서 정씨를 만나지 않았나.

"1월 8일 4개 은행장 회의결과를 통보하기 위해 조선호텔에서 만났다.

이날 오전 은행장 긴급회의 결과를 정회장에게 통보한뒤 오후에 만났다"


-만나서 무슨 얘기를 했나.

"한보철강 주식을 은행에 담보로 제공하지 않으면 더이상 자금지원이
어렵다는 은행장회의 결과를 통보했다.

정회장은 "공장이 완공된뒤 담보를 제공하고 감정결과 담보가 부족하면
주식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왜 담보도 못받고 대출을 해주었나.

"1월8일 오후 정씨를 만났을때 "오후에도 은행장 회의가 있으니 입장을
전달해 주겠다"고 했더니 정씨가 "1월8일중 담보취득에 필요한 서류를 완비
하겠다"고 말했다"


<> 김원길 의원(국민회의)

-은행장이 된 후 이석채 청와대경제수석을 몇번 만났나.

"4개 채권은행이 회의를 한 지난 1월8일 청와대에 가서 딱 한번 만났다"


-채권은행단 회의 결과를 재경원과 은감원, 이수석에게 보고했는데,
주식을 내놓고 경영권을 포기해야 한보를 지원할수 있다는 회의 결정을
정부방침으로 봐도 되나.

"회의에서 정부 방침으로 연락 받은 것이 없다"


-당시 상황을 정부에 다 통보했는데 이 수석이 별다른 말이 없었다는
말인가.

"이 수석이 걱정만 했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지난 1월22일 한보부도를 최후 통첩했는데, 그때 주거래은행장으로서 어떤
역할을 했나.

"정총회장에게 전화로 통보했다.

그러나 부도를 통보한 것은 아니고, 주식을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정총회장이 다음날 아침까지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러나 임창렬 당시 재경원차관이 정부 방침을 통보한 것은 몰랐다"


-1월23일 채권은행단 회의를 소집했나.

"그날 오후였다.

60개 채권금융단 회의를 4시에 소집했고, 앞서 4개 채권은행장들이 모였다"


-그렇게 상황이 긴급한데도 그날 오후 1시40분에 은행을 나갔다가 3시30분
에 들어왔는데, 어디 갔다 왔느냐.

"상황이 다급해지니까 신문기자들이 찾아서 불꺼 놓고 없는 것으로 했다"


-청와대에서 그날 오후 5시30분 먼저 부도설이 흘러나왔다.

부도방침을 청와대로부터 통보받은 것이 아니냐.

"22일 회의에서 주식을 내놓지 않으면 자금지원을 중단키로 합의돼 있었다"


<> 이상만의원(자민련)

-평소 대출시 청와대 등과 협의하지 않는가.

"하지 않는다"


-적정대출의 경우, 부채비율이 자기자본의 1백% 내외인데 한보는 부채비율
이 1천9백%를 넘고 있었다.

재무상태를 점검하지 않았나.

"업종과 기업에 따라 다르다"


-한보철강은 금융비용 부담률도 1백25%나 되는데 증인이 이런 대출을 독단
으로 했다는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독단으로 했다"


-한보철강에 계속 대출해준 이유가 무엇인가.

완공되면 원리금 상환이 가능하다고 보았는가.

"회사의 어려움이 예상됐으나 한보철강이 주력 기업이어서 완공돼 정상
가동되면 원리금 상환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 이규정의원(민주당)

-대출해줄 당시 정태수씨의 뒤에 막강한 힘, 배후가 있다고 믿지 않았느냐.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얘기 들은바 없다.

나는 당시 한보철강공장 공사가 많이 진척돼 있어 공장을 빨리 완공토록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이철수 전행장이 구속된뒤 내부 승진을 통해 은행장이 됐는데 그 때 뒤를
봐준 사람이 있었던 것 아니냐.

"모르겠다"


<> 이국헌의원(신한국당)

-홍인길 전수석을 몇번 만났고, 전화는 몇번 했나.

"홍수석을 개인적으로 전혀 모른다.

만난 적도 전화한 적도 없다"


-김용진 전은감원장은.

"업무상 만난 적이 있다.

필요하면 수시로 만났다.

한보얘기는 하지 않았다"


-이수휴 은감원장은 만났나.

"한보철강을 걱정하면서 얘기한 적은 있다.

지난 1월부터 몇 번 만났으나 횟수는 모르겠다.

수시로 보고하고 이원장의 사무실로 가서 만났다"


-어떻게 걱정했다는 건가.

"회사(한보철강)가 악화돼 사후대책 관계 등을 얘기한 것으로 기억한다"


-한보의 부도처리는 4개은행의 자율결정이었나, 아니면 청와대비서실,
재경원의 의사를 들어서 한 것인가.

"복합적 요인이 있었다.

우선 1월 22일 채권은행단 회의에서 우리가 한보의 주식관계를 언급,더
이상 지원이 곤란하다는 합의가 있었다.

마침 이수석이 주식경영권을 안 내놓으면 추가 지원이 곤란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4개 은행장의 의사가 주였다"


<> 김경재의원(국민회의)

-이우성씨를 아나.

"뉴욕에 근무할 때 알았다"


-이씨에게 얼마를 대출해 주었나.

"내가 은행장으로 근무할 때는 대출이 별로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증인이 전무로 재직하던 94년부터 총 1천1백8만달러를 이씨에게 전무전결
로 대출해 주지 않았나.

"..."


-이씨는 김영삼대통령의 해외측근이자 현철씨의 비자금관리책으로 의혹을
받고 있다.

96년 3월26일 2백90만달러를 10%의 담보만 잡고 대출해 주는 등 신용대출
이나 담보율이 낮은데도 대출해 준 것은 특혜 아닌가.

"모르겠다.

후취담보는 미국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다"


<> 박주천의원(신한국당)

-은행장 시절에 청와대와(특정사안에 대해) 협의를 한 적이 있느냐.

"한보건이 유일하다"


-몇차례나 했나.

"1월8일 직접 청와대에 가서 보고한 것이 유일하다"


-임창렬 재경원차관이 1월21일 부도사실을 통보했다고 정태수씨가 증언했다.

재경원과 상의하거나 전화를 한적은 없나.

"채권은행단이 한보부도처리를 결정한 것은 22일이었다.

21일은 채권은행단이 부도를 최종 결정하기 전이다.

따라서 재경원과는 아무런 접촉이 없었다"


-1월21일 관계기관회의에서 이미 부도방침이 결정된 것 아니냐.

"이석채수석과 전화통화를 한 것은 1월22일 저녁이었다.

회의중에 이 전수석이 전화를 걸어 왔다"


<> 이양희의원(자민련)

-유원건설 인수문제를 박석태상무가 청와대에 보고한 사실을 알고 있나.

"내부적으로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알지 못했다.

그 얘기는 근래에 들었다"


-이철수행장이 당시 전무였던 증인에게 알리지 않고 박상무에게 지시
했다는게 이해가 되지 않는데.

"행장이 담당직원에게 직접 지시하는 일은 종종 있다"


-1월22일 저녁 이청와대수석의 전화를 정부당국의 지시로 생각해도 되나.

"은행장들의 생각과 일치됐던 생각이다"


-작년 11월 증권가에서는 한보부도설이 번져 나가고 그래서 은행들도
대출금 상환에 대해 우려했던 것은 사실이지요.

"네.

사실입니다"


-작년 11월 25일 본점으로 찾아온 정태수씨를 만나서 한 40분동안 얘기한
사실이 있죠.

"날짜는 잘 모르겠습니다"


-한국경제신문 보도에 따르면 당시 정회장이 거세게 항의를 하고 증인은
추가담보없이는 대출이 어렵다고 논쟁을 벌인 것으로 돼있습니다.

사실이죠.

"일부는 맞습니다.

다른은행에 가서 대출받으라고해 실랑이가 있었습니다"


-작년 12월9일 제일은행은 한보철강에 자구이행계획촉구라는 공문을 보내
자구계획의 이행없이는 추가대출을 해줄수 없다고 경고한 적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 이후 한보가 자구계획을 이행한 적이 있었나요.

"잘 모르겠습니다"


-이 공문을 보낸지 불과 15일후에 한보철강에 9백50억원을 대출해준 이유가
뭐지요.

"공장에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는데 추가대출을 해주지 않으려니까
정총회장이 담보를 못 넣겠다고 해서 우리는 부득이 끌려들어간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12일자).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