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원길 의원 (국민회의)

-94년말 한보철강의 주거래은행이 서울신탁은행에서 제일은행으로 바뀐
경위는.

"94년 2월 은행장에 취임할 당시 서울은행은 자금면에서 아주 어려운
처지였다.

한보의 주거래 은행이었는데 한보의 여신잔액이 2천1백억원 전후였다.

한 회사에 여신이 편중되면 어려운 상황이 닥칠 것으로 판단해 관계임원과
부장에게 "한보가 94년도에 공장을 새로 짓고 있어 자금 수요가 많을텐데
은행으로서는 감당 못한다.

주거래은행을 다른 은행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주거래은행이 바뀌는 과정에서 압력을 받은 적이 있나.

"부임하자 마자 그렇게(주거래은행을 바꾸도록) 얘기했다.

외부 압력은 없었다"

-재임중 2년여동안 대출금의 규모를 3백70억원 가량 줄였는데 한보철강이
자금이 어려울때 도와주라는 외압이 없었나.

"없었다.

처음부터 우리는 손을 떼려 했다"

-청와대 정무수석으로부터 한보를 도와주라는 전화를 받았나.

"받은 적이 없다"

-경제수석도 전화하지 않았나.

"없었다"

<> 이상만 의원 (자민련)

-한보철강의 주거래 은행을 회피한 것은 사업성을 검토했기 때문인가.

"그렇지 않다.

은행장 부임후 우리 은행 능력으로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었지
사업성 검토는 하지 않았다"

-당시 정태수 총회장을 만난 적이 있는가.

"없다"

-한보철강측이 92년 대선당시 가장 후원을 많이한 업체라며 은행장들에게
홍보하고 다녔다는데 사실인가.

"들은 바 없다"

-은행 부하직원에 한보철강 여신규모를 조용히 줄이라고 지시했다는데
해당 회사측을 불러 자금사정이 좋은 은행을 선택하라고 떳떳이 말하지 않은
것은 권력층의 지시에 반발하기 어렵고 해서가 아닌가.

"그렇지 않다"

<> 김문수 의원 (신한국당)

-무슨 사건으로 언제 구속됐나.

"96년 11월22일 국제밸브와 관련한 금융부조리 문제로 구속됐다.

반성하고 있다"

-현재 많은 전직 은행장들이 여러가지 이유로 구속돼 있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 이를 어떻게 보고 있나.

"보기가 딱하다"

-다른 은행장들과는 달리 한보에 대한 대출외압을 거부했다는 주변의
얘기가 있는데.

"외압은 없었다.

그런 얘기를 직접 들은 적 없다"

-95년 5월 한보의 주거래은행이 제일은행으로 바뀌는 과정에 외압은 없었나.

"은행감독원과 은행들간에 협의를 통해 조정했을뿐 외압은 없었다.

당시 30대그룹에 진입한 한보에 대한 서울은행의 여신규모는 1천8백억원으로
5천억원 이상인 다른 은행에 비해 적었기 때문에 주거래은행이 바뀐 것이다"

-은행감독원이 은행에 대한 감독업무보다는 외압에 의해 비리를 낳고 있는
것을 방치한다고 보는데.

"은감원은 은행 전반의 흐름에 대해 파악하는 업무를 보고 있다.

은감원이 잘못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으나 정책적 반영이 더 많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 김경재 의원 (국민회의)

-증인은 87년부터 91년까지 은행감독원으로부터 5차례의 경고를 받았는데.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받은 것은 사실이다"

-94년 은행장 취임이후 한보측으로부터 대출을 늘려달라는 부탁이나 외압을
받은 적이 있나.

"없다"

-서울은행이 증인이 은행장에서 물러난 지난해 11월이후 자금사정이 악화된
한보에 3차례에 걸쳐 4백77억원을 대출해 주었다.

외압이 있었다고 생각하느냐.

"11월에 지급보증을 한 1백억원은 내가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서울은행이 담보로 잡고 있는 한보의 부산공장 일부가 토개공에 수용돼
1백30억 가량의 보상금이 나오기로 돼 있었다"

-그러면 나머지 3백77억원의 대출은 무리가 있다고 보지 않는가.

"정리상 그렇게 된 것같다"

<> 김재천 의원 (신한국당)

-서울은행 전무 재직시 한보철강에 대한 여신 결제를 몇건 정도 했나.

"거의 안했다"

-93년 1월 서울은행 상무로 있던 장만화 현행장이 한보에 대출을 해준데는
외압이 있었나.

"당시 서울은행에 있지 않아 전후사정을 잘 모른다"

-정태수씨를 만난 적이 있나.

"있다"

-얼마나 만났나.

"3분 정도 만났다"

<> 이양희 의원 (자민련)

-과거 장학로씨가 28억원을 받고도 그중 21억원은 떡값이라며 이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받지 않았는데 증인은 국제밸브에서 1천만원을 받고 구속
됐으니 청와대와 서울은행에 대한 떡값의 기준이 다른 것 같은데 이의가
없는가.

"정도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정태수씨가 문제있는 기업가로 생각되지 않나.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한보철강에 함부로 자금지원을 거절할수 없는 분위기였지만 서울은행
은 라이프건설 부도로 어려워져 한보 자금지원에 불참할수 있었다는데.

"당시 여신을 운용하기 어려운 형편이어서 그런 방향으로 유도했다"

-은행의 인사나 대출에 외압이 작용한다는 것은 숨길수 없는 사실 아닌가.

"있을수 있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외압이 있을수 있는 것은 현실 아닌가.

"있을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부탁받더라도 할수 없으면 못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 이국헌 의원 (신한국당)

-한보에 대한 대출과정에서 나타난 금융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생각해봤나.

"일반 시중은행의 경우 대형 시설프로젝트에 대해 (사업성에 대해) 정확하게
판단할 기구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은행들간의 공동 전문판단기관이 필요하다고 본다"

-91년 8월 한보에 대한 2백88억원 규모의 대출은 당시 전무로 있던 증인이
주도했나.

"통상 대규모 여신이 이뤄질때 이사회에서 결정하기 때문에 내가 주도한
것은 아니다"

-한보에 대한 이같은 여신과정 전반을 파악하고 있었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은행장에 재직중이던 95년 6월 한보철강에 대해 2백36억원 대출 지급보증을
한 것을 알고 있나.

"확실하게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아마 신규는 아니고 연장하는 것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왜 갑자기 자금사정도 좋지않은 한보에 이런 식으로 지급보증을 했나.

"잘 모르겠다.

기억이 안난다"

-이후에도 한보와 거래실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3백33억원 등 대규모
지급보증을 해 준 이유가 무엇인가.

"신규로 한 것은 없다.

한보에 대한 대출을 줄여나가는 상황에서 신규 지급보증을 섰을 리는 없고
다만 연장했을 것이다"

-이같은 지급보증이 이뤄졌을 당시 한보는 재무구조가 극히 악화돼 있었고
부도설이 시중에 나돌았는데 이를 몰랐나.

"그같은 사실에 대해 확실하게는 몰랐다.

그저 공장을 건설하는 데 많은 자금이 필요하다는 정도만 파악하고 있었다"

<> 김민석 의원 (국민회의)

-서울은행이 92년 이후 한보에 대한 대출을 줄였는데 한보의 사업성을 낮게
평가했기 때문인가.

"은행 사정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정이 좋으면 회사를 잘 도와 키우는게 은행의 임무이다"

-서울은행은 92~94년 3년 연속 은행감독원으로부터 정기감사를 받았다.

정기감사 결과 "한보가 문제가 있다"는 권고를 받았는데 시정조치를 하도록
한보에 지시했나.

"시정조치를 하도록 돼 있다"

-그 이후에 은행감독원의 지적이 사라진 이유는 무엇인가.

"94년말까지 여신을 줄여나가고 한보로부터 3백여억원을 회수했기 때문인
것같다"

<> 김학원 의원 (신한국당)

-정태수씨를 만난 적이 있나.

"전무로 있을 당시 은행에 인사하러와 2~3분간 만났다.

작년말 한보 부도직전 한 차례 더 만났다"

-작년말 구속됐을때 "업체로부터 돈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치부를 위해 쓴
것은 아닌데 투서가 난무한다"고 세태를 원망했다는데.

"그런 말 한 적이 없다"

< 허귀식.김태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