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비리 사건 첫 공판에서부터 검찰의 기소당시 드러나지 않은 사실들이
밝혀짐에 따라 대출외압실체를 둘러싼 논쟁이 법정에서 재현되고 있다.

17일 열린 공판에서는 우선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돼온 청와대 경제관료의
대출압력이 실제로 존재했음이 드러났다.

홍인길피고인은 이날 "한이헌.이석채 전경제수석에게 한보철강에 대한
대출압력을 행사해 달라고 청탁했다"고 진술했다.

한.이 전수석이 시중은행에 압력을 행사해 대출된 금액은 모두 6천9백억원.

결국 청와대 경제수석실이 은행대출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미칠수 있는
중요한 위치에 있음이 드러난 셈이다.

검찰은 이와관련,이들이 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지 않는 한 대출청탁만
으로는 사법처리가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재판과정에서 정확한 사실관계가 규명돼 관련자에 대한 형사처벌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즉 은행장들이 거부의사를 밝혔는데도 불구하고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협박수준의 압력이 행해졌다면 직권남용죄의 적용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다음은 정태수 총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정치인이 과연 여야의원 4명밖에
없는가 하는 부분.

정피고인은 지난해 10월 한보대출과 관련한 국정감사를 무마시켜 달라는
명목으로 권노갑의원에게 1억원을 전달했다.

정피고인은 이 과정에서 자료제출을 요구한 국회의원 4명을 국민회의
"4인방"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진술했다.

또 권의원에게 1억원이 건네진 직후 국감과정에서 질의가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정총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정치인이 더 있을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권의원의 뇌물죄 입증을 위해서는 이들의 실체와 이들이 권의원으로부터
청탁을 받았는지가 밝혀져야 한다.

또 정총회장이 이들 4명에 대해 개별적으로 로비를 벌였는지 여부도
따져 봐야 할 부분이다.

홍의원이 한보 대출비리와 관련해 제기했던 깃털.몸체론도 밝혀져야 할
내용중 하나.

자신을 깃털에 불과하다고 말한 홍피고인은 "일부에서 자신을 현정권의
핵심이라고 말해 자신을 낮춰부르기 위한 의도였을뿐 한보대출의 또 다른
배후세력이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중간수사결과 발표 당시 핵심배후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홍의원이 김명윤 신한국당 고문의 소개를 통해 정총회장을 알개된 사실이
새롭게 드러나 배후세력의 실체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과연 몸통이 있었는지, 있다면 누구인지 규명돼야 한다는 것이다.

한.이 전수석의 대출개입도 홍피고인의 혐의를 입증하는 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곁가지에 불과하다는 시각이다.

변호인들도 이번 재판에서 사실 관계를 다투기 보다는 피고인들이 받은
돈이 대가성이 없는 의례적인 떡값에 불과한 것이었다는 점을 집중 부각,
형량을 낮추는데 주력한다는 전략이다.

이번 공판은 검찰이 김영삼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의 국정개입의혹에 대한
본격 수사시기와 맞아 떨어진다는 점에서 재판진행의 처음부터 끝까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분위기에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수사 당시 한보핵심배후로 민주계 실세와 현철씨가 공공연하게 지목되어
왔고 일부 피고인들이 스스로를 희생양으로 비유해온 점에 비춰 폭탄선언과
같은 돌발변수를 전혀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재판에서 밝혀진 사실이 현철씨에 대한 수사에 연결고리가 될 수 있을
가능성은 재판 전과정에 걸쳐 살아있는 셈이다.

결국 한보사건의 최종 마무리는 현철씨에 대한 재소환조사가 끝난 시점
에서야 일단락될 것이라는 것이 법조주변의 관측이다.

< 이심기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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