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황장엽 노동당비서의 망명허용을 시사함에 따라 남북간 정면대결
국면으로 치닫던 황비서 사건이 조기수습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오랜 "혈맹"인 북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중국으로서도 이번 북한측
"태도변화"에 따라 그만큼 운신의 폭이 넓어졌기 때문이다.

이같은 갑작스런 북한의 입장전환은 중국측이 물밑 접촉을 통해 사실상
황의 "북송불가"라는 의사를 북측에 전달한데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북한의 태도변화는 평양 지도부가 황의 망명을 저지하기 위한
대중 교섭이 여의치 않음에 따라 "승산없는 싸움"보다는 "내부 결속"을
선택한 결과라는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해석이다.

여기에 중국이 공식적으로 북한측의 "양보"를 촉구하지 않았더라도 북한
스스로 사건해결의 한계를 느끼고 "현실"을 택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같은 상황변화로 인해 중국은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사건해결을 위한
남북간 중재에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한중간 공식.비공식 접촉이 활발해지면서 황의 처리방침이 조기 가시화
되는 등 사태가 급진전될 것으로도 예상된다.

중국측은 자체조사를 최대한 빠른 시일내에 마치고 조만간 황에 대한
자유의사 확인절차에 공식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정부는 가급적 빠른 시일내에 황의 서울행을 성사시키기 위해
총력적인 외교전을 전개해 나갈 방침이다.

정부는 우선 북한이 황의 자유의사확인을 전제로 그의 망명수용을
시사했음을 감안, 중국당국에게 관련 절차를 서둘러 줄 것을 요청할
방침이다.

정부는 중국측이 수용할 경우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의 관계자가 황의
자유의사 확인절차에 개입하는 방안도 강구하고 있다.

정부는 또 북한측이 받아들인다면 황의 의사확인과정에서 북한측 인사의
참여도 수용할 수 있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이와함께 가급적 황의 "한국직행"을 시도하되 중국의 입장을 고려, 제3국을
경유하는 방안도 배제하지 않을 방침이다.

이미 정부는 제3국행을 성공리에 진행하기 위한 실무적 검토를 마무리
했다는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유광석 아.태국장은 이와관련, "북한측 방송내용이 일단 색다르기 때문에
정부로서도 주목하고 있다"면서 "이것이 뭘 의미하는지 검토하고 있고
관계국에도 평가를 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국장은 그러나 "북한의 방송을 그대로 믿는 것은 순진한 접근방법"
이라면서 "중요한 것은 북한이 어떤 행동을 하느냐이기 때문에 해석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신중론을 펼쳤다.

그는 특히 "중국측으로서도 북한의 이같은 발언을 평가하는데 시간이
걸리지 않겠느냐"고 말해 북측의 망명수용의사에도 불구, 실제 황의 신병
처리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수도 있음을 내비쳤다.

때문에 정부는 주중 대사관에 긴급 훈령을 내려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도록 지시하는 한편 안기부 통일원 등 관계기관을 통해 북한의 동향에
대해서도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

일단 정부는 북한측의 변화 가능성이 제시된 만큼 객관적인 해결 전망이
보일 경우 총력적인 외교력을 기울여 최대한 빠른 시일내에 사태를
매듭질 방침이다.

정부의 발빠른 움직임이 본격화됨에 따라 이번 주말까지는 최소한 황의
"망명허용"이라는 대원칙에는 한중간 합의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 이건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