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석 내무부장관은 동아대 법대를 나와 부산문화방송 보도부장, 대한통운
대구및 인천지점장등을 거쳐 지난 87년 YS와 인연을 맺으며 정계에 입문했다.

민주계 가신그룹중 비교적 늦게 YS진영에 합류했으나 특유의 충성심과
의리로 짧은 기간내 핵심 실세로 떠오른 인물이다.

87년 대선 당시에는 자신의 집을 팔아 야당후보인 YS를 도왔는가 하면
90년 3월 3당 통합때는 일부 이탈 움직임을 보이는 민주계를 추스르는데
앞장서 YS로부터 각별한 신임을 얻어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3당 통합후 당시 김영삼 민자당대표 비서실장을
지냈고 YS 집권후에는 한국토지공사 사장, 건설부장관, 내무부장관등 요직에
중용됐다.

김장관의 혐의내용은 그가 그동안 맡은 직책과 상당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토지공사 사장과 건설부장관이라는 직책이 건설업체인 (주)한보와
직접적으로 연관될수 밖에 없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김장관이 공식적으로 한보와 관계와 맺기 시작한 것도 토지공사 사장
재임시절로 알려져 있다.

김장관은 당시 토지공사가 주도한 중국 천진한국공단 부지조성 사업의
시공권을 (주)한보에 맡기면서 93년 8월 한보관계자와 기공식에 함께 참석
하기도 했다.

건설부 출신의 한 관계자는 이때 한보가 당진제철소 부지확장사업에 대한
인허가 청탁을 김장관에게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당진제철소 확장부지(14만9천평)는 지난 89년 한보가 처음 매립면허를
얻을 당시 한국전력의 발전소 건설용 사토부지로 확정돼 제철소 부지에서
제외됐었으나 김장관이 93년 12월 건설부장관으로 임명되면서 매립을 적극
추진했다는게 당시 실무자들의 설명이다.

이런 과정에서 금품이 오갔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김장관의 경우 당시 대통령비서실장 또는 안기부장등으로 영전할
것이라는 설이 파다해 한보측이 민주계의 핵심 실세를 중점관리한다는
차원에서 돈을 건냈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의견도 많다.

< 김상철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