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인사의 한보의혹 연루여부에 대한 검찰수사 방향을 놓고 여권핵심부
내에서 미묘한 갈등 양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귀추가 주목된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여권의 삐걱거림은 이제 불협화 차원을 넘어 "누가 살아
남느냐" 하는 권력투쟁의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극단적인 분석을 하기도
한다.

여권의 심각한 갈등설은 지난 10일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으로부터 5천만
원을 받은 것으로 일부 언론에 보도된 김덕룡 의원이 "정치음모설"을 제기
하면서 본격적으로 불거져 나왔다.

김의원은 "내가 한보 정회장으로부터 5천만원을 받았다는 의혹에는 무슨
장난과 음모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자신이 의혹대상에 거명된 것은
"상대측"의 언론플레이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김의원측은 또 <>수십억원 수수설이 수천만원 수수설로 바뀐 점 <>대출외압
수사가 정치인의 선거자금 수사로 바뀌고 있는 점 <>정총회장이 직접 주었다
는 설이 나돌다가 제3자를 통해 준 것으로 바뀐 점 <>김의원 출국설 등을
의문점으로 제시했다.

정치권에서는 김의원측이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그가 1차적으로 겨냥
하고 있는 상대측은 민정계 내지 비민주계일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김의원의 측근들도 차기 대선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서 그동안 민주계
의 독주에 반감을 가져온 비민주계가 김의원 등에게 타격을 가하려는 조직적
음모일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보고 있다.

정가에서는 이와함께 여권의 갈등구도는 한보사태를 이용한 민주계 내부의
"권력투쟁"에서 파생된 것 아니냐는 관측도 하고 있다.

사실 여권핵심부 특히 민주계 내의 갈등설은 오래전부터 정치권의 관심거리
가 되곤 했었기 때문이다.

김영삼 대통령의 집권 중반기에 들어서면서 국정운영방향 등을 놓고 노장파
와 소장파간에는 외부에서 볼때 종종 갈등양상을 보여왔다는 지적이다.

이들은 그러나 민주계라는 공동의 울타리를 벗어나지는 않는 정도의 주도권
경쟁을 벌였다고 봐야한다.

만약 현 상황이 민주계 핵심인사들간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공멸"의
위기 앞에서 일부라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의 게임으로 발전해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소장파들은 한보사태를 매듭짓기 위해서는 민주계의 중진일부가 정치권에서
물러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인데 반해 차기까지를 겨냥하고 있는 중진들
은 이에 맞대응하는 형국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한보의혹 연루자로 맨처음 언론에 보도된 홍인길 의원이 검찰에 출두하기에
앞서 "깃털론"을 꺼내면서 표면화되기 시작한 여권의 내분설은 김덕룡 의원이
불을 지피는 형국이 됐다.

파문이 확산되면서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한 청와대측은 수사내용이 유출되고
각종 괴문서가 난무하고 있는 경위를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보사태의 마무리 못지 않게 여권핵심부의 갈등구조 해소문제도 김대통령
에게는 큰 짐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박정호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