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대통령은 "역사와의 대화"를 시작하고 있는 것인가.

한보사태로 정치권이 걷잡을수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김대통령은 한보 사태에 대해 말이 없다.

측근중의 측근이던 홍인길 의원이 검찰에 소환되고, 또 다른 핵심측근인
김덕룡 의원에게도 검찰의 수사손길이 뻗치고 있는데도 김대통령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설연휴를 지내고 첫날인 10일 김대통령의 공식일정은 청와대 수석비서관들
과의 오찬이 유일했다.

그러나 이날 오찬에서도 김대통령은 한보와 관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고 윤여준 청와대 대변인은 전했다.

김대통령의 깊은 장고가 계속되자 청와대 참모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도대체 한보사태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어디까지 진행되고 김대통령이 어떤
정국수습방안을 구상하고 있는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청와대 참모들은 그러나 김대통령이 여러 경로를 통해 민심동향과 수습
방안을 청취하고 있으며 의견수렴과정을 거쳐 이제는 결단을 실행하는 단계에
들어갔지 않느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김덕룡 의원을 비롯한 민주계 실세의원들에 대한 검찰수사가 시작된 것을
그 신호로 보고 있다.

한보사태의 위기를 정면 돌파함으로써 정치권의 개혁에 시동을 걸었다는
분석이다.

김대통령의 정치스타일이 항상 예상치 못한 결단으로 정국을 반전시킨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에도 초강수로 정국을 반전시킬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
하다.

정국을 반전시킬수 있는 초강수는 일단 핵심측근들의 검찰수사로 나타나고
있다.

이번 사건을 "전형적인 부정부패의 표본"이라고 규정한데서 엿볼수 있듯이
"성역없는 수사"만이 민심을 바로 잡고 정권초기의 초심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정치권의 지각변동이나 정계개편 등 복잡한 변수가 도사리고 있지만 정면
돌파만이 문민정부의 도덕성을 훼손시키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다.

도덕적인 정권, 개혁정권이라는 역사적 평가가 김대통령의 머릿속을 맴돌고
있는지 모른다.

그런점에서 김대통령은 문민정부의 역사적 평가를 염두에 둔 "역사와의
대화"를 시작하고 있는듯 하다.

김대통령은 재작년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을 구속할 때처럼 이번에도
핵심측근들의 구속 등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부정부패의 고리를 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청와대 참모들이 김대통령의 심정을 "결연하다" "비장하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의지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보수사는 정치권에 대한 물갈이의 성격을 띨 것으로 보인다.

과거의 낡은 정치관행에 젖었던 정치인들에게 이번 수사는 사법적이거나
정치적으로 크게 타격을 입힐 전망이다.

문민정부 출범이후 지난 4년간 추진하려다가 주춤했던 정치개혁에 다시
불이 당겨질 것으로 청와대관계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3김시대의 종막을 겨냥한 정치권에 세대교체가 다시한번 최대의 화두로
등장할 전망이다.

김대통령은 한보 수사가 일단락되는 시점을 택해 대국민 담화를 통해 한보
사태에 대한 사과와 함께 이러한 개혁의지를 천명할 것으로 정가관측통들은
예상하고 있다.

또 대대적인 당정개편을 통해서도 세대교체와 개혁이미지를 최대한 살려
정치개혁의 한 단면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신한국당의 경우 이번 한보 수사과정에서 적지 않은 정치인들이 연루된
것으로 들어날 경우 자연스레 세대교체 논의가 일어나고 대권주자도 도덕적
으로 우위에 있는 영입파 중심으로 압축될 전망이다.

김대통령은 이 과정에서 정치권의 제도개혁에도 박차를 가해 한보 사태를
계기로 정치권을 정화시킨다는 복안을 갖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 최완수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