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5일 신한국당 홍인길 의원과 국민회의 권노갑 의원의 억대자금
수수가 일부 언론에 보도되는 등 정치권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되고 있는 것과
관련, 일단 검찰수사를 지켜보자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검찰이 수사중인 사건에 대해 청와대가 나서서 왈가왈부할 성질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김광일 비서실장을 비롯한 수석비서관들은 원론적인 얘기만을 되풀이
할뿐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이들 홍인길.권노갑 의원의 억대자금 수수에 대해서도 김실장은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사전에 보고받은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또 문종수 민정수석도 "검찰에 확인해 보니 아직 거기까지 수사가 진행되지
는 않았다고 하더라"며 "김대통령에게도 사실이 확인된 것은 없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밝혔다.

문수석은 그러나 "수사는 살아있는 생물같아서 어디로 뛸지 아무도 모른다"
며 "검찰수사를 좀더 지켜봐야 할것 같다"고 조심스런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문수석은 특히 "일부 언론보도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권의원이 자금수수
사실을 시인, 홍의원이 부인해도 사람들이 믿겠느냐"며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이원종 정무수석 역시 "오늘 아침 홍의원과 전화통화를 했지만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며 "수사중에 있는 사건에 대해 무슨 얘기를 할수
있느냐"며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외관상으로 보면 청와대가 검찰수사에 개입하고 있지 않다는 인상을 풍기고
있다.

그러나 문종수 민정수석은 요즘 매일 아침 김실장과 함께 김대통령에게 검찰
수사내용을 보고하고 지침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자리에서 검찰수사의 수위가 결정되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청와대 참모들에 따르면 김대통령의 한보수사에 대한 결심은 확고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대통령이 한보사건을 "전형적인 부정부패의 표본"이라고 규정한데서도
알수 있듯이 이번 기회에 정치권은 물론 관계 금융계등의 비리를 뿌리뽑겠다
는 각오가 비장하다는 것이다.

검찰수사결과 측근들의 연루사실이 밝혀지면 어떠한 희생을 치루더라도 법에
따라 처리한다는 결심을 굳히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곧 검찰수사 결과에 따라 엄청난 정치권의 지각변동이 일어날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기회에 그동안 추진하려다가 중단한 정치권의 개혁작업을 다시 손댈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청와대 비서실에서도 이와관련, 민심을 수습하고 국정운영의 주도권을 다시
확보하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정치권 사정을 통해 구악에 물든 정치세력을
도려내야 한다고 건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치판의 물갈이를 통해 과거의 정치행태를 청산하고 깨끗한 정치문화를
정착시키는 개혁작업만이 민심수습에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검찰수사가 일단락되고 난뒤에 예상되는 당정개편도 이같은 방향에서 참신한
인물들을 등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구정치인인 야당의 양 김총재에 대한 압박작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같은 여권의 구상은 검찰수사에서 상당수 여야의원들의 수뢰사실이
밝혀져야 한다는 점을 전제로 하고 있다.

김대통령이 검찰수사를 독려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이유로 풀이된다.

그런 점에서 상도동과 동교동의 가신중의 가신인 홍인기 의원과 권노갑 의원
이 검찰수사선상에 올랐다는 사실은 정치권의 돌풍을 예고하고 있다.

<최완수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6일자).